[정의]
주먹에 쥐고 사용하는 돌도끼. 찍는 날과 자르는 날 두 가지가 모두 있는, 구석기 시대의 만능 도구.
[발달과정/역사]
프랑스의 성. 아슐(st. Acheul)에서 다량 발견되면서 알려진 아술리안기의 전형적인 석기로, 아슐리안기에서 무스테리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와 무스테리안기에서도 발견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주먹도끼의 기술형태학적 특성은 석기의 양면 모두 박리된 것을 원칙으로 한다. 모양은 매우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끝이 뾰족하고 하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 혹은 타원형이다. 가로날 도끼 중에 양면박리로 된 것을 포함시키기도 하며, 큰 자갈돌이나 격지, 암괴 등을 활용하여 만든다.
서구학계에서 보편적인 주먹도끼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다양한 변이를 보여주는 행인상(杏仁狀, Almondshaped), 또는 타원형의 형태를 가지며 전반적으로 첨두부를 뚜렷이 가진다. 단면은 대체로 렌즈(lenticular)형태를 보여주며, 잔손질(trimming)한 흔적이 석기의 양측면을 가로지른다. 날카로운 측면날이 석기의 둘레를 거의 대부분 감싸고 있다. 자연면(cortex)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제작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전반적으로 완전한 박편흔이 동체에 빠짐없이 채워져 있다. 반면에 동아시아 주먹도끼의 전반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다. 양면가공한 것도 눈에 띄지만 그 정도는 서구의 주먹도끼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미약한 수준에 그친다. 단면 가공을 위주로 하였으며 양면가공을 한 경우라도 전면적인 가공이 아닌 교차가공(alternate)이 대부분이다. 형태상으로 전면적인 박편제거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자연면(cortex)이 많이 남아 있다. 기하학적으로 대칭면을 이루지 못하고 중심축이 다소 뒤틀린(skewed) 있다. 두께는 상당히 두터우며 단면의 형태는 서구의 것처럼 렌즈형태이기보다는 원석의 형태에 많이 좌우된다. 가공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날이 형성된 부분에는 뚜렷한 추가 가공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측면의 날부분이 직선상을 이루지 않고 상당수준 꼬인(twisted)양상을 보여준다. 날끝각에서 알 수 있듯이 첨두부의 예리한 정도는 서구의 것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 연질타격법(soft hammer)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박편흔이 크기가 상당히 크며 깊게 패여있다. 날부분에 추가로 손질가공(retouch)한 흔적이 거의 없으며 있다고 해도 계획적인 가공이 아닌 편의적인 가공으로 간주된다.
주먹도끼는 사용흔분석 결과, 사냥·도살행위·나무가공·가죽가공·뼈가공 등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청된다. 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등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러한 주먹도끼들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곡리, 가월리, 주월리, 병산리, 금굴, 금파리 등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1919
주먹찌르개(握尖頭器)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6049 / 000
상세설명
[정의]
짐승을 찔러 죽이거나 가죽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한 도구. 손에 쥐는 주먹찌르개와 창에 꽂는 창끝찌르개, 화살촉으로 쓰는 화살촉찌르개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찌르개는 크게 주먹찌르개와 격지상 찌르개로 나눌 수 있다. 주먹찍르개(握尖頭器, point)는 몸돌석기로서 끝이 뾰족하고 그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지는 찌르개의 일종이다. 다른 종류의 찌르개와는 달리 선택된 몸돌전체를 가지고 양면으로 박리하여 만든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양면석기의 범주에 드는 석기이지만 외면으로 박리하는 경우도 있다. 손잡이 부분에 자연면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사냥이나 유기물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격지상 찌르개(剝片狀尖頭器)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르발루아 찌르개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 석기는 소형의 것으로서 그 외형이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우며 끝날이 뾰족한 특징을 갖는다. 그러한 끝날을 갖기 위해 특별한 잔손질이 베풀어졌을 때 정확한 의미에서의 찌르개이다. 이 석기는 주로 사냥용 도구로 사용된다. 이 석기는 보통 무스테리안문화와 후기구석기로 전환되는 유적들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르발루아 기술로 만들어지는 찌르개는 부차적인 잔손질이 없이도 기능상 무제가 없으므로 잔손질 없이 그댜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석기는 후기구석기 후기에 접어들면서 슴베가 붙어 슴베찌르개와 같은 새로운 형태로 전환되어진다. 이 석기는 동북 아시아의 구석기연구에서 편년설정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 석기는 둥글납작한 석영의 윗부분과 옆부분을 양면으로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손잡이 부분의 둥근 자연면은 그대로 남아 있다. 끝이 뾰족하고 그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약간 넓어지는 첨두형(尖頭形)의 주먹찌르개로, 사냥이나 유기물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8
찍개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6048 / 000
상세설명
[정의]
나무를 다듬거나 짐승의 뼈를 찍고, 짐승의 살을 토막 내는 데 쓰는 도구.
[발달과정/역사]
유럽과 아프리카의 전기구석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기문화가 주먹도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찍개유릐 석기는 모비우스에 의해 동아시아 찍개전통(chopper-chopping tool tradition)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심이 된다. 초기 연구자들은 이러한 석기군을 가진 동아시아의 주민집단이 '문화적 낙후성'을 보여준다고 보았으나, 최근 학자들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지역에 산재해있는 석재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찍개 중심의 석기문화는 동아시아에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한국에서는 거의 전역에서 찍개류 석기가 다량으로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전곡리를 비롯한 임진-한탕강 일대의 유적, 상무룡리를 비롯한 남한강일대의 유적, 장동리 유적을 비롯한 영산강일대의 유적 등이 있다. 한국에서 이 석기전통은 후기구석기시대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석재이 한쪽 가장자리에 날이 조성되어 있으며 형태적 변이가 다양한 석기로, 기술형태학적으로 크게 외면찍개(chopper)와 양면찍개(chopping tooi) 2종류로 나뉜다. 이 석기는 동일한 한 가장자리를 양면으로 혹은 단면으로 박리하여 만든다. 날 반대쪽에 대체로 자연면으로 남아 있는 손잡이 부분이 있다. 이 두 종류의 석기들은 날의 형태(볼록날·직선날·오목날)에 따라 다시 세분되기도 한다. 이 석기는 형태성 몸돌과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으며, 기능적인 분석 결과에 따라 석기로 혹은 몸돌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석기는 전기구석시대의 모드 1(mode Ⅰ)에 해당하는 석기문화의 근간으로서 가장 초기 인류로부터 사용되었으며, 아프리카로부터 유라시 대륙에 이르기까지 전기구석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도구이다. 이 석기는 석영 윗부분의 가장자리를 가공하여 날을 만든 석기이다. 날의 반대쪽에 자연면으로 남아 있는 손잡이 부분이 있다. 이 석기는 기술형태학적으로는 외면찍개 또는 외날찍개로 불리운다.
1917
옹관(甕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관(棺)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690 / 000
상세설명
[정의]
큰 독을 널로 사용한 선사 및 고대의 무덤으로 '옹관묘(甕棺墓)'라고도 한다.
[발달과정/역사]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며 지역과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독널(甕棺)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체, 즉 주검이나 뼈를 묻은 토기를 말하고 있다. 넓은 의미로는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든지 흙으로 빚어 구운 것을 일컫지만 대체로는 일상용이나 널로 쓰도로 만든 토기에 주검이나 뼈를 묻는 것을 말한다. 한편 뼈만을 추려서 묻는 것을 뼈단지(骨壺), 기와를 사용하였으면 기와널(瓦棺), 집이나 신발·배모양의 네모진 형태의 것은 도관(陶棺)이라고 있어 좁은 의미의 독널과는 구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인 앙소(仰韶)문화의 西安 半坡村이나 洛陽 王灣 유적에서 집단적으로 발견된 바 있고, 일본에서도 신석기단계인 죠몽(繩文)시대의 중기부터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신석기시대의 독널무덤이 알려지고 있다. 즉 진주 남강댐 수몰지구인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신석기시대 독널이 알려졌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독널무덤은 바닥이 납작하고 몸통이 배가 부르며 목은 없으나 아가리가 약간 밖으로 꺾인 듯한 소위 송국리식의 토기를 바르게 세워 묻고 위에 뚜껑을 덮은 형식이다. 토기의 바닥이나 몸통의 아랫부분에는 일부러 조그만 그멍을 뚫고 있는데 이 구멍은 배수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초기철기시대부터 세롭게 등장하는 독널은 독을 옆으로 눕혀 아가리를 맞대거나 삽입한 이음식(合口式)이다. 이 시대의 독널은 대체로 크기가 비슷한 2개의 토기로 아가리를 맞대거나 약간 삽입시킨 전형적인 이음식과 주검을 넣는 으뜸독(主甕)에 뚜껑 또는 덮개로서의 막음용 토기를 결합한 뚜껑식(合蓋式)이 많다. 그러나 하나의 토기를 옆으로 뉘어 주검을 넣고 돌로 아가리를 막은 외독(單甕)무덤도 있으며 신창동이나 평남 남경 유적에서는 3개의 토기를 이어 붙인 돌널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철기시대의 독널무덤은 나무널무덤이나 작은 돌덧널무덤과 더불어 조사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분느 독널무덤이 중심묘제에 부수되어 나타나는 딸린무덤(陪葬墓)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소아용으로 추정된다. 이음식은 대체로 독이나 항아리가 쓰이고 막음용으로는 항아리, 시루, 바리, 화로모양토기 등 아주 다양하다. 독널로 쓰인 토기는 이른 시기에는 민무늬토기가 쓰이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적갈색 똔느 회색의 연질토기가 많고 영남지방을 중심으로는 와질토기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독널무덤은 초기철기시대의 독널과 유사성이 아주 많으며, 철기시대 말기에는 삼국토기가 생산되면서 대형의 고분이 조성되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른 시기의 고분과 겹치기도 한다.
1916
풍구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농업(農業) 수확탈곡(收穫脫穀) 풍구(풍구)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5687 / 000
상세설명
[정의]
곡물에 섞인 쭉정이·겨·먼지 등을 날리는 데 쓰는 연장.
[명칭]
지역에 따라 '풍로(경상남도 영산, 전라남도 보성)'·'풀무'·'풍차(風車)'로도 불린다. ≪북학의≫에는 '양선(聞扇)'으로, ≪농정촬요(農政撮要)≫에는 '풍선차(風扇車)'로 표기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나무로 만든 둥근 통 안에 여러 개의 날개가 달린 축을 장치하고 밖에서 이것을 돌리면 큰 바람이 나도록 만들었다. 위에는 곡식을 흘려넣는 아가리가 따로 있으며, 축을 돌리면서 곡식을 부으면 겉껍질이나 검부러기들은 바람에 날려 옆으로 빠져나가고 낟알만 아래로 떨어진다. 바람을 일으켜 보리를 비롯하여 콩·팥, 밀에 섞인 겨, 먼지·쭉정이 따위를 가려내는 데에 쓰인다. 한 가마니의 쌀을 내리려면 3분쯤 걸린다. 풍구는 18세기 전까지는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지 않은듯하다. 박지원(朴趾源)은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 부뚜의 불합리성을 설명한 끝에 "내가 경상도에서 고을살이를 할 때 풍구를 만들어 시험해보았더니, 어린아이 하나가 이에 기대서서 발판을 약간 밟아도 100섬이나 되는 낟알을 하루에 다 부칠 수 있었다."고 주장하여 중국의 농가에는 이것이 집집마다 있으나, 우리는 이의 사용을 꺼린다고 개탄하였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풍구 중에는 손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발로 밟아서 부채가 돌아가게 한 것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