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물고기를 잡는 도구의 일종.
[발달과정/역사]
유럽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한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출토된다. 한국의 낚시는 형태에 따라 결합식낚시(結合式釣針, two-piece hook)와 단식낚시(單式釣針, one-piece hook)로 대별된다. 결합식낚시의 재질은 돌로 만든 축(軸)부분에 사슴뿔, 멧돼지의 이빨, 짐승의 뼈 등을 바늘로 쓴 경우가 많다. 단식낚시의 재질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는 사슴뿔, 멧돼지의 송곳니 등이 사용되었으며 철기시대에는 쇠로 만들었다. 청동기시대에 청동제의 낚시가 출토된 적은 없었으나 영암에서 출토된 거푸집(鎔范)을 보면 낚시바늘의 틀이 새겨져있어 청동제낚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결합식낚시(結合式釣針, two-piece hook)는 면결합식을 하는 오산리형, 연대도형, 송도형과 축의 일부와 바늘의 일부가 겹쳐서 결합하는 상노대도형으로 대별된다. 오산리형의 북한계는 동해안에서는 함북 송형동이고 서해안에서는 전북 노래섬 조개더미이며, 집중 분포지는 남해안지방이다. 남해안지방에서는 신석기 전기~중기 동안의 동삼동 조개더미, 후기의 구평리·농소리 조개더미에서 출토되어 신석기 전기간에 걸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면결합에 있어서는 송도형이 전기에 나타난다. 중기가 되면 축과 바늘을 일부 겹쳐서 결합사는 상노대도형이 나타나고, 면결합을 하는 연대도형은 상노대도형의 재질에 오산리형의 형태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단식낚시(單式釣針, one-piece hook)는 재질에 따라서 골각제품, 청동제품, 철제품으로 구분되고, 골각제품은 낚시의 형태에 따라 세분된다. 골각제의 단식낚시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함북 나진만 주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타지역에서는 산발적으로 분포하며 크기는 다양하다. 청동제 낚시는 아직 발견된 예가 없지만 영암에서 출토된 거품집의 존재로 미루어 장래에 출토가 기대된다. 철제 낚시는 철기시대부터 현재에까지 이르고, 지리적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이 가운데 경상남도 부산이 그 중심지이다. 이때부터 부장품으로 무덤에 매납된다. 한국에서 출토되는 원시, 고대 낚시업의 발전단계를 결합식조침(오산리형) - 결합식조침, 골각제 단식조침 - 결합식조침(오산리형) - 단식조침, 청동제 조침 - 철제 초대형조침 - 철재 대형조침 - 철제 중형조침 - 철제 소형조침으로 모식화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결합식낚시, 골각제 단식낚시는 동해안과 서·남해안지방의 해안부에 한정되어 분포하고, 청동기시대에는 결합식낚시가 소멸되고 골각제 단식낚시가 서해안까지 분포 확대된다. 철기사용이 일반화되는 원삼국시대 낚시는 철제화되어 초대형낚시가 내륙과 남해안지방에 나타난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소형화된 낚시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정의]
물고기를 찔러 잡는 데 쓰는 어구.
[기원]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작살인 듯한 그림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돌과 뼈로 만든 찌르개살과 작살 끝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 가운데 특이한 것은 부산 동삼동의 조개더미에서 나온 흑요석제(黑曜石製) 작살로서, 사다리꼴의 밑변을 톱니처럼 갈아 놓아서 한 번 박히면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밖에 비슷한 작살이 통영 상노대도(上老大島)의 조개더미에서도 나왔으며, 웅기의 서포항 유적에서는 미늘을 양쪽에 붙인 뼈로 만든 작살도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찌르개살이나 작살을 많이 썼으며,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바위그림 가운데 고래에 작살이 꽂혀 있는 것도 보인다. 철기시대로 들어오면서 작살은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경주 안압지 출토유물 중 미늘이 달린 두발작살[二枝槍]과 가운뎃날을 제외한 좌우 양날에 미늘을 붙인 세발작살[三枝槍], 그리고 날이 여섯 개나 달린 여섯발작살[多枝槍]이 나와서 7∼9세기에 신라에서 작살을 널리 쓴 사실을 알려 준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와의 교역품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바다표범은 모두 작살로 잡았을 것이다. 작살의 역사는 꾸준히 이어져서 조선 말기에도 큰 강가에서 세발작살로 연어를 많이 잡았으며, 오늘날에는 냇가나 못 등에서 붕어나 모래무지를 잡으며, 강원도 강릉에서는 장마철에 알을 낳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도 거둔다. 충청북도에서는 작살의 발수에 따라 세가다리·네가다리·오가다리 등으로 부른다. 가다리는 가랑이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고래를 잡을 때 줄이 달린 작살을 손으로 던졌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이것을 쏘는 포(船首砲)가 발명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기선에 장치하여 작살을 쏘는 포경포(捕鯨砲)가 등장하면서 고래 잡는 작살은 모두 포로 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돌고래 따위를 잡을 때에는 손으로 던지는 작살을 이용하는데, 강원도지방에서는 돌고래류 뿐 아니라 개복치도 이것으로 잡는다.
[구조 및 종류]
작대기 끝에 삼지창 비슷한 쇠를 박거나 한두 개의 쇠 꼬챙이를 꽂았다. 찌르개살과 작살의 두 종류가 있다. 찌르개살은 날 끝에 미늘(낚시에 붙은 작은 갈고리)이 달리지 않은 것으로 물고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푹 찔러 잡으며, 작살은 날 끝에 미늘이 달렸으며 자루에 노끈을 잡아매고 물고기를 향하여 던져서 잡는다. 이 밖에 미늘은 있으되 손에 쥐고 찔러 잡는 것과 미늘이 없더라도 자루에 노끈을 매고 던지는 것도 작살의 한 가지로 분류한다. 이 돌작살은 양양 오산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소형 석기이다. 질감이 무른 점판암계통의 석재를 전면 마연하여 제작된 것으로 평면 삼각형의 날과 부정형의 자루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 끝은 뾰족하게 하고 자루의 중간부에 작은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기능상 물고기와 바다짐승을 찔러서 잡는 자돌구(刺突具)의 일종인 작살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반적으로 미늘이 달린 작살과는 그 형태가 달라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3
이미지 준비 중
고배뚜껑(高杯蓋)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479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고배(高杯)의 뚜껑(蓋)으로 사용된 토기이다.
1902
고배뚜껑(高杯蓋)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479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고배(高杯)의 뚜껑(蓋)으로 사용된 토기이다.
1901
이미지 준비 중
고배뚜껑(高杯蓋)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479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고배(高杯)의 뚜껑(蓋)으로 사용된 토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