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돌을 가공하여 만든 살촉.
[발달과정/역사]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석재로서 혈암(頁岩), 이암(泥岩), 편암(片岩), 판암(坂岩), 혼펠스 등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었고, 길이가 5㎝내외의 것이 가장 많으나 긴 것은 10㎝를 넘도 것도 있다. 돌화살촉 형식은 대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의 슴베(莖)가 있는가에 따라 우선 크게 유경식(有莖式)과 무경식(無莖式)으로 나누기도 하고, 형태에 따라 버들잎형(柳葉形), 삼각형(三角形), 석침형(石針形)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돌화살촉은 유경식(有莖式) 석촉(石鏃)이다.
[정의]
돌을 가공하여 만든 살촉.
[발달과정/역사]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석재로서 혈암(頁岩), 이암(泥岩), 편암(片岩), 판암(坂岩), 혼펠스 등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었고, 길이가 5㎝내외의 것이 가장 많으나 긴 것은 10㎝를 넘도 것도 있다. 돌화살촉 형식은 대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의 슴베(莖)가 있는가에 따라 우선 크게 유경식(有莖式)과 무경식(無莖式)으로 나누기도 하고, 형태에 따라 버들잎형(柳葉形), 삼각형(三角形), 석침형(石針形)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돌화살촉은 유경식(有莖式) 석촉(石鏃)이다.
[정의]
돌을 가공하여 만든 살촉.
[발달과정/역사]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석재로서 혈암(頁岩), 이암(泥岩), 편암(片岩), 판암(坂岩), 혼펠스 등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었고, 길이가 5㎝내외의 것이 가장 많으나 긴 것은 10㎝를 넘도 것도 있다. 돌화살촉 형식은 대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의 슴베(莖)가 있는가에 따라 우선 크게 유경식(有莖式)과 무경식(無莖式)으로 나누기도 하고, 형태에 따라 버들잎형(柳葉形), 삼각형(三角形), 석침형(石針形)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이 돌화살촉은 무경식(無莖式) 석촉(石鏃)이다.
[정의]
돌을 가공하여 만든 살촉.
[발달과정/역사]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돌화살촉(石鏃)이 마연(磨硏)의 수법으로 제작된 예는 이미 신석기기대부터 볼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된 것이고, 다음 초기철기시대에도 일부 지속된다. 석재로서 혈암(頁岩), 이암(泥岩), 편암(片岩), 판암(坂岩), 혼펠스 등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었고, 길이가 5㎝내외의 것이 가장 많으나 긴 것은 10㎝를 넘도 것도 있다. 돌화살촉 형식은 대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의 슴베(莖)가 있는가에 따라 우선 크게 유경식(有莖式)과 무경식(無莖式)으로 나누기도 하고, 형태에 따라 버들잎형(柳葉形), 삼각형(三角形), 석침형(石針形)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돌화살촉은 유경식(有莖式) 석촉(石鏃)이다.
1821
그물추(漁網錘)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어업(漁業) 어로(漁撈) 어망추(漁網錘)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5169 / 000
상세설명
[정의]
그물에 매달아서 그물이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어로 도구.
[발달과정/역사]
원시 및 고대사회에서 사용되었던 그물의 존재는 부자(浮子), 망(網), 침자(沈子) 가운데 침자인 그물추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지만, 부자와 그물은 유기물로 만들어졌기 한국과 같은 산성토양에서는 남아 있기 어렵다. 다만 그물의 경우는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알려주고 있는데 예를 들면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에 그물의 눌린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토기로 보아 그 해당시기는 신석기시대 전기이며 그물눈(편목)은 6㎝미만이다.그물추에서 신석시대에 유구석추(有溝石錘), 토기편추(土器片錘), 절목석추(切目石錘), 양자강형토추(楊子江形土錘) 등이 출토되며 청동기시대에는 유구석·토추(有溝石·土錘), 토기편추, 절목석추, 관상토추(管狀土錘), 원판형 토추(圓板形土錘) 등이 나온다. 철기시대에는 유구토추, 절목석추, 관상토추, 3종이 있다. 그밖에 유공석추(有孔石錘), 납작한 자갈의 양끝을 떼어낸 역석추(礫石錘) 등이 있으며 이들 그물추의 생김새는 그 이후 삼국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간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신석시시대의 그물추 가운데 유구석추는 한반도 동북지방의 해안에서 등장하여 청동기시대까지 사용된다. 한편 유구석추는 원삼국시대에 동북지방과 연해주에서 나오고 있다. 토기편추는 동북지방과 서북지방에 집중하여 분포되며 남부지방에서는 봉계리 유적에서만 출토된 바 있다. 토기편추는 청동시대가 되면 대동강유역이나 서울의 한강유역까지 그 분포범위가 확대된다. 이 무렵에는 재질의 변화가 일어나 서북지방에서는 절목석추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동강유역에서 남하하여 남한강의 상류에서도 출현하고 있다. 한편 한강유역에서는 토기편추가 유구토추와 원판형토추의 사용으로 흐름이 바뀌는데 유구토추는 남부지방의 서부지역까지, 원판형토추는 남부지방 동북내륙지방까지 연결된다. 시기적으로는 남부지방 서부지역까지 내려온 유구토추는 철기시대까지 계속되지만 원판형토추는 청동기시대에 소멸되고 만다. 이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모습의 관상토추가 서북지방에 등장하는데 이것은 중국 동북지방의 것과 관련 있다고 보인다. 관상토추는 한반도 동해안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발견된다. 삼국시대에는 관상토추가 그물추로 정형화하여 합천 저포리 B지구 고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껴묻거리(副葬品)로도 매납된다. 관상토추의 급격한 보급은 제작의 편리함에 있었다고 추측된다. 관상토추는 가는 줄기에 그물의 용도에 맞추어 점토을 적당한 크기로 쥐어놓고 이것을 응달에서 말린 다음 구움으로서 한 번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한 번씩 쥐었던 흔적은 미사리 유적에서 출토된 관상토추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므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경향과는 별도로 제주도에서는 유공석추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물론 유공석추의 뒤를 잇는 것은 관상토추이다. 이 그물추는 납작한 자갈돌의 양끝을 떼어낸 역석추(礫石錘)이다. 영동지방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