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가루를 반죽하여 통에 넣고 공이로 눌러서 국수를 뽑아내는 틀.
[역사]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제면업을 하였으므로 이미 국수틀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그 구조나 모양은 전하지 않는다. 국수틀에 관한 기록은 18세기의 ≪임원십육지≫ 섬용지(贍用志)에 비로소 보인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국수틀을 면자(膽趺)라고 하며 그 형태를 "큰 통나무를 중간이 부르도록 잘 다듬어서 그 중간에 구멍을 뚫는다. 그 구멍의 지름이 4∼5촌이고 이 둥근 구멍의 안을 무쇠로 싸고 그 바닥에 작은 구멍을 무수히 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수집에서는 큰 솥 위에 국수틀을 걸고, 반죽을 구멍 안에 넣은 다음 공이로 눌러, 솥 안으로 국수가 흘러들어가 삶아지게끔 설치하였다. 근래에 말린 밀국수가 시판되면서 국수틀도 기계화되었다. 즉, 반죽을 통에 넣고 손으로 돌리면 압력이 가해져 구멍으로 국수가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현재는 전동력으로 압력을 가해서 만드는 틀을 쓴다.
1504
길마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농업(農業) 운반(運搬) 길마(길마)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320 / 000
상세설명
[정의]
소 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는 데 쓰는 연장.
[명칭]
지역에 따라 '지르마(충청북도 봉양)·질매 (경상남도 영산)·질마(충청남도 서산)·지르매(강원도)'라고도 불린다. 옛말은 '기르매'·'기르마'·'기犬마'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말굽쇠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 두개를 앞뒤로 나란히 놓고, 안쪽 양편에 두개의 막대를 대어 이들을 고정시킨다. 안쪽에는 짚으로 짠 언치를 대어 소 등에 얹는다. 한편, 틀 위쪽에 앞뒤에 끈이 달린 가는 막대 두개를 역시 좌우 양편에 꿰어놓는다. 앞끈은 소의 가슴에 두르고, 뒤끈은 소의 궁둥이에 대는 껑거리막대에 잡아맨다. 이 끈들은 소 등 위에서 길마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또한, 길마는 옹구나 발채 또는 거지게 따위를 올려놓기 위한 받침대의 구실을 하며, 이것 때문에 틀에 실린 물건이 소의 등이나 옆구리에 닿지 않는다. 길마는 주로 소나무로 만든다.
1503
원반(圓盤)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반상(盤床) 소반(小盤)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309 / 000
상세설명
[정의]
식기를 받치는 작은 규모의 상.
[개설]
평평한 반면(盤面)의 통판 널과 여기에 연결되는 다리로 이루어진다. 반(盤) 아래에는 여러 가지 조각이나 문양으로 장식한 난간이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리를 견고하게 하여 주는 중대(中帶)와 족대(足臺)가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동하기 편리한 소형 상이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 유교이념인 남녀유별·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상으로 겸상보다는 독상이 주로 쓰였으며, 공간적으로도 부엌과 방이 멀고 규모가 작으면서 좌식생활(坐式生活)을 하는 한식 온돌방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소반의 종류는 산지·형태·용도에 따라 60여종으로 분류되며 명칭과 구조가 다르다. 각 지역은 그 지방 특유의 수목과 생활양식에 따라 지방색을 띠며, 그중 특색이 두드러지는 것이 통영반(統營盤)·나주반(羅州盤)·해주반(海州盤)으로 제작·기교면에서 뛰어나다. 반면의 형태는 8각·12각·장방형·4방형·원형·반월형(半月形)·연엽형(蓮葉形)·화형(花形) 등으로 분류되며, 다리는 모양에 따라 구족반(狗足盤)·호족반(虎足盤)·죽절반(竹節盤)·단각반(單脚盤) 등으로 불린다. 경상도는 죽절형, 전라도는 호족형, 강원도·경기도는 구족형이 주로 나타나고 있다. 쓰임새에 따라서는 식반(食盤)·주안반(酒案盤)·공고상(公故床)·제상(祭床)·교자상(交子床)·대궐반(大闕盤)·돌상[百玩盤]·약반(藥盤)·춘반(春盤)·과반(果盤) 등으로 나누어진다. 재료는 은행나무·호두나무·가래나무·오동나무·피나무·느티나무 등이 반면에 사용되었고, 다리에는 소나무·단풍나무·버드나무 등이 쓰였다. 표면의 칠은 생칠(生漆)·주칠(朱漆)·흑칠(黑漆)과 일반 식물성 기름칠을 하여 소반이 트거나 흠이 생기는 것을 막고 방수가 되게 하였다. 주칠은 혼례용과 궁중용으로 쓰였고, 흑칠은 제사에 사용되었다. 색깔은 황토분·석간주(石間蘚 : 산화철을 많이 포함한 붉은 빛의 흙)·치자 등으로 입히며, 좀더 진한 색을 내기 위해 먹물이나 검은 흙을 섞어 바르기도 하였다. 화려하게 자개를 박아 장식한 것도 있다. 이 소반은 굵은 통나무를 물레로 돌려 깍은 둥근 상이다. 이와 같은 원반은 대부분 강원도지방에서 제작되었고 주로 파기 쉬운 피나무를 이용하고 있는데 여러 행사에 간편하게 사용되는 외상이다. 이 소반은 굵은 통나무를 물레로 돌려 깍은 둥근 상이다. 이와 같은 천판의 형태가 둥근 소반으로, 통이 큰 아름드리 나무를 이용하여 굽다리까지 한꺼번에 깎아 만든 통반(쟁반소반)을 일컫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다리의 형태에 관계없이 천판이 둥근 것을 총칭한다. 종류는 크기에 따라 대원반·중원반으로 나누고, 다리의 형태에 따라 두리반[八面床]·쟁반소반·호족원반(虎足圓盤)·구족원반(狗足圓盤) 등으로 나눈다. 마감은 흑칠보다는 주칠이 많다. 조선시대의 궁중용 기물을 도해한 ≪진찬의궤(進饌儀軌)≫에 의하면, 원반은 수라상이나 잔칫상 차림에 있어서 주반(主盤)의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판의 지름이 넓은 원반일수록 다리 및 변죽의 높이가 병설되는 소형의 곁상보다 오히려 낮은데, 이는 원반 위에 음식물을 바로 진설하지 않고 굽이 높은 제기형 접시에 받쳐 이중으로 괴어 사용하였던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원반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신라시대 토기기반(土器器盤)의 형식에서 그 조형(祖形)을 찾을 수 있다. 원반도 다른 소반과 함
1502
초롱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조명구(照明具) 초롱(초롱)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300 / 000
상세설명
[정의]
등불이나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외피를 씌운 옥외용 제등(提燈).
[형태 및 종류]
초롱에는 지초롱[紙燭籠]·사초롱[紗燭籠]·조족등(照足燈)·북등[鼓燈]이 있다. 크기는 15∼50㎝ 정도이며 재료는 동사(銅絲)·철사(鐵絲)·대오리[竹絲]·나무·수수깡으로 만들었고 내부 바닥 중심에는 초꽂이를 부착하였다. 표면은 백지나 유지(油紙) 또는 깁[紗]을 발랐으며, 유리가 수입된 뒤로는 유리를 끼우기도 하였다. ① 지초롱 : 나무와 대로 골조를 하여 만든 사각육면체·육각팔면체·팔각십면체의 틀에 백지나 유지를 바른 것으로, 한 면에 문을 내어 개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부에는 화기(火氣)가 빠지도록 원형·팔각형의 투공을 하였고, 손잡이는 나무나 대로 만들었다. 대나무 자루 중에는 대의 공동을 이용하여 예비 초를 넣게 만든 것도 있다. 지초롱에는 종이로만 만들어 접으면 납작한 지갑처럼 되는 작은 것도 있어 도포 속에 넣고 다닐 수 있었다. 야사(野史)에 명재상 이항복(李恒福)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창황중에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할 때 도포 속에 넣어두었던 초롱을 꺼내 길을 인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때의 초롱이 이러한 접을 수 있는 작은 초롱이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② 사초롱 : 일반 초롱보다 크기가 휠씬 크며 타원의 농(籠)형태를 보인다. 길이 30∼70㎝, 너비 1㎝ 미만의 납작한 철이나 놋쇠 또는 대오리를 활처럼 휘게 하여 양끝을 맞물렸으며 내부 바닥에는 초꽂이를 고정시켰다. 표면은 자루처럼 만든 청사·홍사·흑사·황사로 씌웠으며 손잡이는 나무나 대로 만들었다. 사초롱은 고려 때에는 궁중의 연회에 사용하였으나 조선 초·중기에는 절약을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초가 양산되는 후기부터 궁중의 연회와 국왕의 거동시뿐 아니라 일반인의 혼례에도 사용하였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사를 벗기고 살을 모아 접어서 보관하였다. 이 사초롱에는 살을 반으로 접을 수 있도록 한 간편한 것도 있다. ③ 조족등 : 철사나 동사 또는 대오리를 둥글게 휘어 둥근 박처럼 만들어 표면에 유지를 바른 것이다. 하부에는 지름 10∼15㎝ 정도의 원형 개구(開口)를 내어 마치 둥근 항아리를 엎어놓은 형태를 보인다. 내부의 초꽂이는 등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자재로 회전하여 수평이 유지되도록 설계되었다. 손잡이는 나무나 대로서 등의 정상에서 수직되게 달아 밑의 개구부가 발 앞을 비추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발을 비춘다 하여 조족등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일명 탐조등(探照燈)이라고도 하며, 포졸들이 순라를 돌 때 들고 다녀 도적등이라고도 불렀다. 조족등은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수입한 동사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동사 외에도 철사나 대오리로 만들었다. 동사등의 원형은 남조의 송나라 효무제(孝武帝) 때 농가에서 사용하였던 갈등롱의 재료가 뒤에 동사로 바뀌어진 것이라 한다.
이 조족등의 표면은 동사나 대오리에 의하여 나타난 돌기로서 독특한 주름문이 형성되었다. 이 주름문 위에는 팔괘문·원내화문(圓內花文)·문자 등을 장식하였다. 정교하게 만든 것 중에는 손잡이 주위에 8개의 작은 환기공을 투공한 것도 있다. ④ 북등 : 1850년경부터 191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나무판에 수수깡을 엮어 만든 값이 싼 제등이다. 사방 5㎝ 정도의 나무판 위에 길이 60㎝ 정도의 댓가지를 구부려 대각선으로 박아 손잡이를 삼고 수수깡으로 둥글게 틀을 하
1501
초롱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조명구(照明具) 초롱(초롱)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99 / 000
상세설명
[정의]
등불이나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외피를 씌운 옥외용 제등(提燈).
[형태 및 종류]
초롱에는 지초롱[紙燭籠]·사초롱[紗燭籠]·조족등(照足燈)·북등[鼓燈]이 있다. 크기는 15∼50㎝ 정도이며 재료는 동사(銅絲)·철사(鐵絲)·대오리[竹絲]·나무·수수깡으로 만들었고 내부 바닥 중심에는 초꽂이를 부착하였다. 표면은 백지나 유지(油紙) 또는 깁[紗]을 발랐으며, 유리가 수입된 뒤로는 유리를 끼우기도 하였다. ① 지초롱 : 나무와 대로 골조를 하여 만든 사각육면체·육각팔면체·팔각십면체의 틀에 백지나 유지를 바른 것으로, 한 면에 문을 내어 개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부에는 화기(火氣)가 빠지도록 원형·팔각형의 투공을 하였고, 손잡이는 나무나 대로 만들었다. 대나무 자루 중에는 대의 공동을 이용하여 예비 초를 넣게 만든 것도 있다. 지초롱에는 종이로만 만들어 접으면 납작한 지갑처럼 되는 작은 것도 있어 도포 속에 넣고 다닐 수 있었다. 야사(野史)에 명재상 이항복(李恒福)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창황중에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할 때 도포 속에 넣어두었던 초롱을 꺼내 길을 인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때의 초롱이 이러한 접을 수 있는 작은 초롱이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② 사초롱 : 일반 초롱보다 크기가 휠씬 크며 타원의 농(籠)형태를 보인다. 길이 30∼70㎝, 너비 1㎝ 미만의 납작한 철이나 놋쇠 또는 대오리를 활처럼 휘게 하여 양끝을 맞물렸으며 내부 바닥에는 초꽂이를 고정시켰다. 표면은 자루처럼 만든 청사·홍사·흑사·황사로 씌웠으며 손잡이는 나무나 대로 만들었다. 사초롱은 고려 때에는 궁중의 연회에 사용하였으나 조선 초·중기에는 절약을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초가 양산되는 후기부터 궁중의 연회와 국왕의 거동시뿐 아니라 일반인의 혼례에도 사용하였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사를 벗기고 살을 모아 접어서 보관하였다. 이 사초롱에는 살을 반으로 접을 수 있도록 한 간편한 것도 있다. ③ 조족등 : 철사나 동사 또는 대오리를 둥글게 휘어 둥근 박처럼 만들어 표면에 유지를 바른 것이다. 하부에는 지름 10∼15㎝ 정도의 원형 개구(開口)를 내어 마치 둥근 항아리를 엎어놓은 형태를 보인다. 내부의 초꽂이는 등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자재로 회전하여 수평이 유지되도록 설계되었다. 손잡이는 나무나 대로서 등의 정상에서 수직되게 달아 밑의 개구부가 발 앞을 비추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발을 비춘다 하여 조족등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일명 탐조등(探照燈)이라고도 하며, 포졸들이 순라를 돌 때 들고 다녀 도적등이라고도 불렀다. 조족등은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수입한 동사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동사 외에도 철사나 대오리로 만들었다. 동사등의 원형은 남조의 송나라 효무제(孝武帝) 때 농가에서 사용하였던 갈등롱의 재료가 뒤에 동사로 바뀌어진 것이라 한다.
이 조족등의 표면은 동사나 대오리에 의하여 나타난 돌기로서 독특한 주름문이 형성되었다. 이 주름문 위에는 팔괘문·원내화문(圓內花文)·문자 등을 장식하였다. 정교하게 만든 것 중에는 손잡이 주위에 8개의 작은 환기공을 투공한 것도 있다. ④ 북등 : 1850년경부터 191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나무판에 수수깡을 엮어 만든 값이 싼 제등이다. 사방 5㎝ 정도의 나무판 위에 길이 60㎝ 정도의 댓가지를 구부려 대각선으로 박아 손잡이를 삼고 수수깡으로 둥글게 틀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