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흑(갈)유(黑褐釉)란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약이 두텁게 시유되었을 때에 흑색, 흑갈색을 띠는 자기로서, 반자기질이나 자기질의 태토를 이루어 기벽이 묵직하거나 가벼운 흑(갈)유 자기가 대부분으로, 유색이 짙고 여린 경우에 따른 흑유, 흑갈유자기로 불리우고 있다.
[발달과정/역사]
흑(갈)유(黑褐釉)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최근 발굴조사 된 황해남도 봉천 원산리 청자 가마터에서 청자와 함께 발견된 예와, 1982년 고흥 운대리요지에서 햇무리굽 청자보시기들과 함께 출토된 흑유 자기편들, 그리고 해남 진산리 일대의 요지에서 수많은 녹청자와 함께 흑유, 흑갈유 자기편들이 발견된 것들이 있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용인 서리요지의 햇무리굽층(2층, 3층)에서 청자보시기편들과 함께 흑유 자기편이 소량 발견되었으며, 봉천 원산리 3,4호 요지에서도 햇무리굽 청자 보시기들과 함께 발견되고 있고, 고흥 운대리요지에서도 햇무리굽 청자보시기와 함께 흑유 광구병, 흑유단지 편이 발견되고 있어 先햇무리굽(4층)의 제작 시기 이후인 1022년 전후 무렵에 청자의 가마에서 청자와 함게 제작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자의 보시기나 대접, 접시 등은 만든 예가 없고, 주로 광구병이나 단지, 병 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되며, 태토도 철분이 많은 반자기질의 태토의 예가 대부분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형으로는 고려시대에는 광구병, 술병, 주전자, 유병, 광구의 항아리, 큰 합, 정병, 대접, 잔 드으로 만들어졌으며, 항아리 및 단지와 광구병, 술병의 예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단지, 손잡이 달린 동이, 약탕기, 둥근 단지, 기름병, 대접, 귀대접, 매병, 술병, 큰 병 등이 있으며, 특히 단지와 병종류가 많이 만들어져 남아 있다. 특색은, 문양이 거의 없는 무문(無文) 위주이고, 드물게 음·양각의 연판문을 동체에 시문한 광구병 등이 있을 뿐이다. 기형은 녹청자나 도기의 기형을 닮고 있는 예가 주목되며, 녹청자와 구별이 어려운 예도 있다. 조선 초기에는 분청자의 기형을 닮고 분청자의 요지에서 제작된 예가 많으며, 흑유 자기窯에서만 제작된 듯한 술병이나 편병의 예도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질그릇병을 닮거나 동이, 단지 등을 닮은 예와 칠기를 닮은 예도 있어 질그릇과 함께 생활에 널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흑유병은 구부(口部)는 각이져 세워지고 넓으며 좁아진 짧은 목, 어깨에서 서서히 벌어져 동부(胴部)에서 중심을 이룬 구형(球形)의 동체(胴體)를 이룬 풍만한 병에 어깨부분에 주둥이가 달린 병이다. 기면(器面)에는 물레의 회전 자국이 있으며, 어깨부분에 두 줄의 음각선(陰刻線)이 둘러져 있다. 전면에 흑갈색의 유약이 시유되었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굽은 안굽의 형태이며,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식초병으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
석간주(石間硃)란 붉은 산화철을 많이 포함한 빛이 붉은 흙으로, 석회암, 혈암 등이 분해된 돌 사이에서 나는 흙으로 주토(朱土), 적토(赤土) 등으로 불여진다. 이 산화철을 안료로 하여 백자의 태토 위에 시유하여 철색, 고동색빛 색깔을 내는 자기를 조선시대 18세기에는 '석간주'라고 하였다. 석간주 자기란 철채자기를 뜻하는 것으로 주로 백자 태토나 반자기질의 태토를 사용하여 제작되며, 기면 전체에 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발달과정/역사]
석간주 자기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철화백자, 철채백자가 많이 제작되는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비롯하여 18, 19세기에 널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동체에 8각 또는 10각의 면을 깎아 세우고 접시 모양의 뚜껑이 있는 전형적인 석간주라고 불려지는 단지들은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호남·영남 일대의 백자 가마터에서 백자와 함께 특별히 제작되었던 철채자기로 알려져 왔다. 단지모양의 몸체에 이처럼 다각으로 모를 깎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전반 광주의 금사리요에서 백자단지나 병 그리고 제기 등을 만든 데서 비롯하며, 이러한 다각의 단지는 19세기에 들어 병이나 제기, 단지 등에 더욱 확대되어 제작되며, 이러한 다각의 단지 외에도 다각 병, 술병, 작은 병, 단지, 주구(注口)가 달린 단지, 광구병 등에도 널리 사용되어 제작되기에 이르른다. 흑(갈)유 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반까지 오랜 기간 제작되었다. 대개 이들은 녹청자와 같은 가마(窯)에서 생산된 경우가 많아 어떤 것은 녹청자와 구별하기 어련운 것도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석간주 자기의 특색은, 다각의 단지의 경우 그 특이한 조형감각에 있으며, 동체를 모로 깎은 예리함과 다각이 주는 강건한 효과가 변형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접시 모양의 뚜껑이 잘 어울리며, 꿀이나 양념 등을 담아 주방에서 생활용에 긴요하게 사용되었으며, 병들의 경우도 기름이나, 간장, 술 등을 담는 데 요긴하게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석간주 자기의 굽다리는 특이하게 18세기 백자의 저부의 면과 굽 안바닥의 면이 같은 점이 주목되며, 태토는 반자기질이나 백자 태토를 사용하고 있다. 유색은 짙은 경우 흑색, 흑갈색을 띠거나, 옅은 경우 엿빛 색깔을 띠며, 일반적으로 산화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유약은 전면에 곱게 시유되거나 반점을 이루어 얼룩얼룩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병은 동체가 풍만하고 굽다리가 굽 안바닥으로 깊어져 19~20세기의 기형을 따르고 있다. 석간주 자기는 철채자기라고 할 수 있으며, 꿀이나 양념, 기름이나 술 등을 담아 사용하던 생활용의 자기로서 17세기 후반부터 철화백자와 함께 만들어졌으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걸쳐 석간주 자기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다각의 단지와 다각의 병 등이 석간주 자기로 만들어져 널리 주방영의 생활용 자기로 사용되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르렀던 조선 후기의 특수한 자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석간주병은 구부(口部)는 각이져 세워지고, 긴 목에 어깨에서부터 벌어져 동체(胴體) 상부(上部)에서 중심을 이루다 좁아져 세워진 병이다. 기면(器面)에는 물레의 회전 자국이 나있으며, 어깨부분에 풀, 산수, 새, 꽃, 잎문을 나타내었다. 전면에 적갈색의 유약을 시유하였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바닥은 평저(平底)이다. 식초병으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
흑(갈)유(黑褐釉)란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약이 두텁게 시유되었을 때에 흑색, 흑갈색을 띠는 자기로서, 반자기질이나 자기질의 태토를 이루어 기벽이 묵직하거나 가벼운 흑(갈)유 자기가 대부분으로, 유색이 짙고 여린 경우에 따른 흑유, 흑갈유자기로 불리우고 있다.
[발달과정/역사]
흑(갈)유(黑褐釉)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최근 발굴조사 된 황해남도 봉천 원산리 청자 가마터에서 청자와 함께 발견된 예와, 1982년 고흥 운대리요지에서 햇무리굽 청자보시기들과 함께 출토된 흑유 자기편들, 그리고 해남 진산리 일대의 요지에서 수많은 녹청자와 함께 흑유, 흑갈유 자기편들이 발견된 것들이 있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용인 서리요지의 햇무리굽층(2층, 3층)에서 청자보시기편들과 함께 흑유 자기편이 소량 발견되었으며, 봉천 원산리 3,4호 요지에서도 햇무리굽 청자 보시기들과 함께 발견되고 있고, 고흥 운대리요지에서도 햇무리굽 청자보시기와 함께 흑유 광구병, 흑유단지 편이 발견되고 있어 先햇무리굽(4층)의 제작 시기 이후인 1022년 전후 무렵에 청자의 가마에서 청자와 함게 제작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자의 보시기나 대접, 접시 등은 만든 예가 없고, 주로 광구병이나 단지, 병 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되며, 태토도 철분이 많은 반자기질의 태토의 예가 대부분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형으로는 고려시대에는 광구병, 술병, 주전자, 유병, 광구의 항아리, 큰 합, 정병, 대접, 잔 드으로 만들어졌으며, 항아리 및 단지와 광구병, 술병의 예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단지, 손잡이 달린 동이, 약탕기, 둥근 단지, 기름병, 대접, 귀대접, 매병, 술병, 큰 병 등이 있으며, 특히 단지와 병종류가 많이 만들어져 남아 있다. 특색은, 문양이 거의 없는 무문(無文) 위주이고, 드물게 음·양각의 연판문을 동체에 시문한 광구병 등이 있을 뿐이다. 기형은 녹청자나 도기의 기형을 닮고 있는 예가 주목되며, 녹청자와 구별이 어려운 예도 있다. 조선 초기에는 분청자의 기형을 닮고 분청자의 요지에서 제작된 예가 많으며, 흑유 자기窯에서만 제작된 듯한 술병이나 편병의 예도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질그릇병을 닮거나 동이, 단지 등을 닮은 예와 칠기를 닮은 예도 있어 질그릇과 함께 생활에 널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흑유병은 구부(口部)는 각이져 세워지고, 좁아진 목에 어깨에서부터 벌어져 동부(胴部)에서 풍만해 졌다 좁아져 세워진 병이다. 기면(器面)에는 물레의 회전 자국이 나있다. 어깨부분에 두 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두르고, 그 사이에 자유로이 한 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둘렀고 동체(胴體) 중간에 한 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둘렀다. 흑갈색의 유약이 시유되었으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바닥은 평저(平底)이며, 바닥에 먹을 이용하여 시문한 것으로 보이나 확인할 수 없다. 식초병으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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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단지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기타(其他)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단지(단지)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4275 / 000
상세설명
[정의]
양념을 담아서 사용하거나 보관하는 용기.
[내용]
양념이란 음식의 맛과 향을 돋구기 위하여 사용하는 재료를 총칭하는 마로써 일명 조미료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담아서 사용하거나 보관하는 용기를 양념단지라고 한다.
[역사]
삼국시대부터 옹기로 만들어진 그릇을 생활도구로 사용하여 왔는데 그 중에서 양념단지로 보이는 용기로는 기원후 8세기의 쌍단지가 있다. 1981년 서울대학교 고고학과 주관으로 발굴작업이 이루어진 몽촌토성 유적지에서 각종 토기와 함께 출토된 검정색의 쌍단지는 오늘날 우리가 양념단지로 사용하고 있는 쌍단지와 비교적 전체적인 모양과 단지의 연결고리 기법, 구연부, 외전, 크기 등이 많이 닮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소금, 깨, 고추가루, 마늘쪽 등 수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양념을 주로 넣어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양념단지는 일단지, 이단지, 삼단지, 사단지, 오단지, 육단지 등 그 규모가 크고 작은 것들이 있으며 보통은 옹기제품이 대부분이고, 오지, 질 등의 순서로 제품들이 있다. 단지와 단지는 짝을 지어 평행연결고리로 이어지고 손잡이로 반원 띠를 만들어서 적당한 간격으로 연결고리를 부착하였으며 돌출 매화점을 찍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릇을 형성하였다. 가끔 세개의 오죽(烏竹)을 원뿔형으로 세워서 손잡이로 사용한 고급품도 있다. 특이한 것으로 4개의 단지를 사각으로 평행 연결하고 그 위에 하나를 더 올려 만든 오단지는 조선시대의 가부장적 유교사상과 가화만사성의 가훈적인 의미가 깃들여 있어 당시 양반사회의 가정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