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비가 올 때 어깨에 걸쳐 둘러 입던 우장(雨裝). 사의(侶衣)라고도 한다.
[내용]
지방에 따라 도랭이·도롱옷·드렁이·도링이·되랭이·되롱이 등의 방언이 있고, 옛말로는 되롱 혹은 누역이라고 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도롱이는 짚이나 띠같은 풀로 촘촘하게 잇달아 엮어 들이치는 빗물이 스며들어가지 않게 하고, 줄거리 끝부분은 그대로 드리워 끝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빗물이 안으로 스며들 겨를이 없이 줄기를 따라 땅으로 흘러내리게 하였다. 길이는 활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둔부선(臀部線)까지 내려오게 하였다. 흔히, 농촌에서 비오는 날 들일을 할 때 사용하였는데, 머리에는 어깨 너비 이상이 되는 삿갓을 씀으로써 우비의 역할을 다하였던 것이다. 속요(俗謠)에 "삿갓쓰고 도롱이 띠고 잠방이 입고……"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것은 우중(雨中)의 농촌풍경을 읊은 것이라 하겠다. 또, 도롱이의 방언이 많은 것은 그것이 그만큼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이증(裏證)하여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1444
뱀집게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수렵(狩獵) 사냥구(사냥구) 뱀집게(뱀집게)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3806 / 000
상세설명
[정의]
뱀을 잡을 때 사용하는 도구.
[내용]
뱀의 사냥은 머리부분을 집게로 눌러 잡아 뱀이 자유로이 운신을 할 수 없도록 하여 생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에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뱀집게이다. 뱀집게는 나무를 이용하여 보통 1미터 정도 길이로 제작한다. 형태는 일반적인 집게와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이 있는가 하면, 끝부분이 갈라진 나무가지를 이용하여 만든 간단한 형태의 것도 있다. 그리고 하나의 막대기에 쇠 연결고리를 달아 위에서 당기면 막대기 끝에 있는 쇠막대기가 안으로 조여지는 원리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이 뱀집게는 일반적인 집게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1443
작살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어업(漁業) 어로(漁撈) 작살(작살)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795 / 000
상세설명
[정의]
물고기를 찔러 잡는 데 쓰는 어구.
[기원]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작살인 듯한 그림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돌과 뼈로 만든 찌르개살과 작살 끝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 가운데 특이한 것은 부산 동삼동의 조개더미에서 나온 흑요석제(黑曜石製) 작살로서, 사다리꼴의 밑변을 톱니처럼 갈아 놓아서 한 번 박히면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밖에 비슷한 작살이 통영 상노대도(上老大島)의 조개더미에서도 나왔으며, 웅기의 서포항 유적에서는 미늘을 양쪽에 붙인 뼈로 만든 작살도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찌르개살이나 작살을 많이 썼으며,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바위그림 가운데 고래에 작살이 꽂혀 있는 것도 보인다. 철기시대로 들어오면서 작살은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경주 안압지 출토유물 중 미늘이 달린 두발작살[二枝槍]과 가운뎃날을 제외한 좌우 양날에 미늘을 붙인 세발작살[三枝槍], 그리고 날이 여섯 개나 달린 여섯발작살[多枝槍]이 나와서 7∼9세기에 신라에서 작살을 널리 쓴 사실을 알려 준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와의 교역품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바다표범은 모두 작살로 잡았을 것이다. 작살의 역사는 꾸준히 이어져서 조선 말기에도 큰 강가에서 세발작살로 연어를 많이 잡았으며, 오늘날에는 냇가나 못 등에서 붕어나 모래무지를 잡으며, 강원도 강릉에서는 장마철에 알을 낳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도 거둔다. 충청북도에서는 작살의 발수에 따라 세가다리·네가다리·오가다리 등으로 부른다. 가다리는 가랑이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고래를 잡을 때 줄이 달린 작살을 손으로 던졌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이것을 쏘는 포(船首砲)가 발명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기선에 장치하여 작살을 쏘는 포경포(捕鯨砲)가 등장하면서 고래 잡는 작살은 모두 포로 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돌고래 따위를 잡을 때에는 손으로 던지는 작살을 이용하는데, 강원도지방에서는 돌고래류 뿐 아니라 개복치도 이것으로 잡는다.
[구조 및 종류]
작대기 끝에 삼지창 비슷한 쇠를 박거나 한두 개의 쇠 꼬챙이를 꽂았다. 찌르개살과 작살의 두 종류가 있다. 찌르개살은 날 끝에 미늘(낚시에 붙은 작은 갈고리)이 달리지 않은 것으로 물고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푹 찔러 잡으며, 작살은 날 끝에 미늘이 달렸으며 자루에 노끈을 잡아매고 물고기를 향하여 던져서 잡는다. 이 밖에 미늘은 있으되 손에 쥐고 찔러 잡는 것과 미늘이 없더라도 자루에 노끈을 매고 던지는 것도 작살의 한 가지로 분류한다.
1442
유기세수대야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위생용구(衛生用具) 대야(대야)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790 / 000
상세설명
[정의]
물을 담아 세수 ·세탁을 할 때 쓰는 넓적한 그릇.
[내용]
옛날에는 손과 얼굴을 씻는 데만 썼으며, 질그릇·나무 제품이었고 놋쇠 제품이 일반화된 것은 중세 이후이다. 오늘날에는 세면기류·세탁기의 보급으로 세수·세탁용보다는 식기 등을 씻거나, 아이를 목욕시키는 데 많이 쓴다. 재료도 함석·알루미늄·합성수지 등이 많이 쓰인다. 이 대야의 몸체는 바닥에서 좁혀지며 올라오다가 약간 위로 경사진 전을 달았다. 특이한 문양은 없으나 전의 가장자리에 한줄의 음각선이 돌려져 있다.
1441
쇠스랑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농업(農業) 파종경작(播種耕作) 쇠스랑(쇠스랑)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3787 / 000
상세설명
[정의]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풀무덤 등을 쳐내는 데 쓰는 농기구.
[명칭]
명칭은 지역에 따라 '소시랑(인천광역시 덕적도, 전라남도 보성·영광, 전라북도 일대)·소스랑(경상남도 영산)·쇠시랑(전라북도, 경상남도, 강원도 강릉)·소스랭이(평안남도)·쇠서랑' 등으로도 불린다. ≪농사직설≫에는 '철치파(鐵齒擺 : 鄕名 手愁音)'로 표기되어 있고 하위지(河緯地)의 유서(遺書)에는 '소시랑(小時郎)'으로, ≪고사신서(攷事新書)≫ 농포문(農圃門)에는 '소시랑(小屎郎)', ≪해동농서≫에는 '철탑(鐵塔)'으로 올라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모양은 갈퀴모양으로 서너개의 발이 달리고 기역자로 구부러진 한쪽 끝에 나무자루를 박았다. 근래에는 서양의 포크처럼 발과 몸이 곧게 펴진 것을 쓰기도 하는데 이를 '호꾸'라 부른다. 한편, 강원도와 같이 나무가 흔한 곳에서는 가지가 두세 갈래로 벌어진 자연생의 물푸레나무를 이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수렁이 져서 소가 들어서기 어려운 논에서는 이것으로 파서 엎고, 덩어리진 흙을 깬다. 또, 밭의 흙을 파서 고르기도 하고 씨를 뿌린 뒤에 이것으로 흙을 덮기도 하며 두엄을 쳐내는 데에도 쓴다. 소가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의 흙도 이것으로 다루며 밭에서는 등 부분으로 흙덩이를 부순다. 쇠스랑으로는 남자 한 사람이 하루에 1,000여평의 밭을 고를 수 있다. 발이 두개인 것은 무게가 1.3㎏, 세개 짜리는 1.7㎏쯤 된다. 근래에는 쇠스랑의 목 부분을 한번 더 구부려 힘을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생산된다. 농가에서는 이것을 밤에 방문 밖에 놓아, 도둑을 잡기도 하였다. 달아나던 도둑이 쇠스랑 발을 밟으면, 자루가 벌떡 일어서서 이마에 큰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