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박으로 만든 다목적 그릇.
[역사]
우리 민족이 바가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랜 옛날부터이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신화라든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원효조(元曉條)>에 바가지를 두드려 악기로 썼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상원조(上元條)>에도 남녀 유아들이 겨울부터 파랑 ·빨강 ·노랑으로 물들인 호리병박을 차고 다니다가 정월 대보름 전야에 남몰래 길가에 버리면 액(厄)을 물리칠 수 있다 하여 차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고, 《흥부 놀부전》에서도 바가지를 신비적 존재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한국 가정의 필수용품으로서 쌀을 퍼내는 쌀바가지, 장독에 두고 쓰는 장조랑바가지, 물을 퍼내는 물바가지, 소의 먹이를 떠내는 쇠죽바가지 등 용도가 다양하다. 봄에 박씨를 뿌렸다가 가을에 박을 따서 만드는데, 반(半)으로 켜고 속을 파낸 다음, 삶아 다시 안팎을 깨끗이 긁어낸 후에 말려서 쓴다. 이 바가지는 여물죽을 푸는 데 쓰는 자루가 달린 바가지로 지방에 따라 여물박·여물바가지·남팍·쇠물박·소죽바가지라고도 한다. 소나 돼지의 먹이를 퍼담는 데 쓰인다. 예전에는 밤나무나 소나무로 만들어서 뒤틀리지 않게 솥에 삶아서 사용하였다.
989
토기항아리(土器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연질(軟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1495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밑이 둥글고 구연(口緣)이 큰 항아리로서 연질이며 회백색을 띠고 있다. 동체(胴體)는 둥근 밑에서 벌어져 올라가 배부분(胴部)에서 최대 지름을 이루며 그 위로 다시 오므라들어 목(頸部)을 형성하였다. 목(頸部)는 짧고 외반(外反)되어 구연(口緣)을 이루며 입술(口脣)은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입술(口脣)의 끝에는 음각선대(陰刻線帶)를 돌려 오목하게 하였다. 동체(胴體) 전면에 타날수법(打捺手法)에 의한 삿자리무늬(繩蓆文)이 시문되었고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파손되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988
장군(缶)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농업(農業) 운반(運搬) 장군(장군)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492 / 000
상세설명
[정의]
물·술·간장·오줌 따위를 담는데 쓰는 그릇.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중두리를 뉘어놓은 모양의 것으로 한쪽 마구리는 평평하고 다른 쪽 마구리는 반구형(半球形)이며, 배때기에 좁은 아가리를 붙였다. 오지로 만든 작은 것에는 물이나 술 따위를 넣으나 큰 것에는 오줌을 담아 지게로 운반한다. 이를 오줌장군·오줌추마리(경상남도 영산)·소매장군(전라남도 보성)·장군(전라남도 보성·구례, 강원도 명주) 등으로 부른다. 장군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큰 것은 지름 30㎝, 길이 60㎝ 정도로서 서말의 오줌이 들어가며, 작은 것은 한 말들이도 있다. 강원도의 오줌장군은 한쪽 마구리를 봉긋하게 오그리고 끝에 깃봉모양의 돌기를 붙였다. 이것은 손잡이다. 들어 내리거나 오줌을 쏟기 위하여 한쪽으로 기울일 때 이용한다.
한편, 충청도일대에서는 항아리처럼 배가 부르고 위쪽에 주둥이가 달렸으며 양쪽에 손잡이를 붙인 것을 쓴다. 이것을 지게에 얹어 보리밭으로 나른 다음에 오줌을 새갓통에 따라서 준다. 오줌장군 가운데에는 쪽나무를 모아 통을 걸어서 만든 나무장군이 있다. 가운데가 약간 부르고, 양끝은 조금 작으며, 오지장군처럼 가운데에 주둥이를 달았다. 몸 주위로는 대를 둘러 감아 고정시키고 주둥이는 단단한 나무를 깎아 박는다. 나무장군은 오줌뿐 아니라 거름을 담아 나르기도 한다. 작은 것에는 두 말, 큰 것에는 너 말을 담는다. 나무장군은 오지장군처럼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어 공사장에서 물을 져 나르는 데에도 썼다. 수원성을 쌓은 내력을 적은 〈화성의궤(華城儀軌)〉에 그림이 실려 있다. 그러나 나무장군은 쓰지 않을 때 나무쪽이 오그라들어서 조각이 나는 일이 많아 다시 결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유중림(柳重臨)은 ≪증보산림경제≫에 장군을 장분(長盆)으로 적었다.
987
번철(燔鐵)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식(食) 취사(炊事) 취사(炊事) 번철(燔鐵)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488 / 000
상세설명
[정의]
지짐질을 할 때에 쓰는 무쇠로 만든 그릇.
[역사]
번철은 그 재료나 형태면에서 가마솥뚜껑과 유사하고 또, 최근까지도 농촌 산간지방에서는 번철 대신 솥뚜껑에 지짐질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 대략 무쇠솥이 사용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신라시대로부터의 명절인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반죽한 쌀가루를 산과 들로 가지고 나가 주변의 국화잎을 뜯어 국화전을 부쳐먹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적자(炙子)나 전철(煎鐵)이라고도 한다. 모양은 솥뚜껑과 비슷하게 둥글넓적하며, 운두나 손잡이가 달린 것도 있다. 번철에다 지짐질을 할 때에는 반드시 기름을 둘러야 하는데, 이 때에는 무나 호박을 갸름하게 썰어 여기에 기름을 묻혀 번철에 문지르면 된다. 또 번철은 다 쓴 뒤에 보관을 잘해야 다음번에 편히 쓸 수가 있다. 번철을 보관하는 법은 먼저 쇠격지가 생기지 않도록 사용 후에 반드시 번철을 수세미 같은 것으로 닦아내고, 녹이 슬지 않도록 여기에 다시 기름을 발라 기름종이에 싸둔다. 만일, 번철에 녹이 슬었을 경우에는, 우선 녹을 제거한 다음 기름칠을 충분히 하여 밀떡 같은 것을 부쳐 길을 들이면 된다. 지금은 이러한 무쇠번철 대신에 양은이나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프라이팬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팬은 얄팍하고 가벼워, 번철만이 가지는 육중하고 질박한 우리 고유의 토속적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986
함지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함지박(함지박)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486 / 000
상세설명
[정의]
큰 나무를 쪼개어 안을 파내서 만든 큰 그릇.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만드는 방법과 모양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하는데, 귀함지·도래함지·모함지 등이 있다. 귀함지는 굵은 통나무를 길이로 켜서 외부를 거의 직사각형으로 갸름하게 파고, 내부는 장방형의 형태로 판다. 바닥든 대체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둥근 모양이다. 바닥은 대체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둥근 모양이다. 양쪽에 전이 달려 귀함지라 불리며, 이것을 손잡이로 쓸 수 있어 편리하다. 도래함지는 굵은 통나무 속을 둥글게 판 것이다. 윗부분에 빙 둘러 전이 달려 있으며, 벽면은 밖으로 구부러지게 파서 바닥면과의 각을 죽였다. 둥글어서 도래함지라 한다. 모함지는 직사각형의 널빤지로 밑판을 삼고 위로 바라지게 벽면을 짜서 목판형식을 만든다. 그 쓰이는데가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두루 쓰인다. 곡물이나 음식을 담아 두기도 하고,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여름에 함지에 밥을 푼 다음에 밥그릇에 담기도 한다. 그리고 식품류를 담고 떡가루를 버무리거나 반죽할 때, 또는 김장소나 깍두기를 버무리는 등 조리의 여러 조작을 할 때, 혹은 떡이나 과줄 등을 담아 운반할 때 등 여러가지 일에 쓰인다. 크기는 여러가지이며 무겁고 튼튼하므로 한 가정에서 대를 물리면서 사용하였다. 중간 크기의 것은 가운데 지름이 80㎝, 깊이 20㎝ 정도이며 주변에 5∼6 ㎝ 정도의 전을 붙인다. 전을 좌우 양쪽에만 10㎝ 정도로 넓게 붙인 것도 있으며, 큰 것에는 붙이지 않는다. 새로 만든 함지박은 콩댐을 먹여 반들거리고 견고하게 하였다. 목제 외에 종이로 만든 종이함지도 있다. 이것은 먼저 물에 담가서 땟국물과 풀기를 뺀 고한지(古韓紙)를 꼭 짜서 묽은 풀에 다시 담가 풀물이 고루 배도록 한 다음, 목함지 둘레에다 2∼3㎝의 두께로 부착시켜 형태를 만들고 잘 말린다. 잘 마르면 목함지에서 떼어 다시 손질하여 콩댐을 한다. 물기 없는 음식을 다룰 때 사용하면 가벼워서 매우 편리하다. 이 함지는 양쪽에 전이 달려 있는 귀함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