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깨끗한 물이나 감로수(甘露水)를 담는 병.
[발달과정/역사]
《법화경》권 하(下)에 의하면 원래는 승려가 반드시 지녀햐 할 18물 중의 하나였던 것이 점차 불전(佛前)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정병은 부처님 앞에 바치는 공양구뿐 아니라 관음보살이 가지는 지물로서의 역할도 함께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宣和奉使高麗圖經)》에 정병은 가늘고 긴 목에 테두리가 들러져 있고 넓은 어깨 부분에는 뚜껑이 있는 주둥이가 나와 있는 독특한 형태라고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주로 청동이나 점토로 만들어지나 금, 은을 사용하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융성과 함께 특히 많이 제작되었는데 장식문양에서 독특한 은입사(銀入絲)기법을 이용하여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나 유로수금문(柳蘆水禽文) 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은십사기법은 고려시대의 상감청자 시원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조형상으로도 고려시대의 우수한 금속공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고려시대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과 청자양각포류수금문정병 등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으로 본래는 승려의 일용품이던 것이 차츰 부처 앞에 정수를 받치는 공양구로서 그 용도의 폭이 넓어졌다. 정병은 몸체와 목에 해당되는 경부(頸部), 뚜껑과 물을 넣고 빼는 호스와 같은 첨대(尖臺)와 입구인 주구부(注口部)로 구성된다. 몸체에는 물을 따르는 입구가 달려 있는데 주둥이를 구부(口部))라고 하며 그 모양이 새의 부리와 같다고 하여 귀때라고도 한다. 이 청동정병은 길게 솟은 첨대(尖臺)는 다각형이고, 아가리는 끝이 밖으로 말려 있다. 중간의 환대(環臺는 단(段)을 지며 부풀어졌다가 좁아져 목에 이른다. 어깨에 부착된 주구(注口)는 턱을 지는 형태로 뚜껑이 달려 있다.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배불러진 몸체는 다시 서서히 좁아져 하단에 이른다. 전면에 아무런 문양이 조각되지 않았고 표면은 녹청색의 녹이 전면에 퍼져 있다.
829
날라리(消吶)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문화예술(文化藝術) 음악(音樂) 악기(樂器) 날라리(날라리)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230 / 000
상세설명
[정의]
국악기 중 목부(木部)에 속하는 관악기.
[개요]
목관악기로 쇄납[哨君]또는 호적(胡笛)이라고도 하며, 속칭 날라리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부터 ≪국조오례의≫의 전정고취(殿庭鼓吹)와 ≪세조실록≫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정대업(定大業)〉에서 소무(昭武)·분웅(奮雄)·영관(永觀)장에도 썼고, 그 뒤에는 취타(吹打)·농악, 불가(佛家)의 재(齋)에도 연주되어 오늘에 이른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태평소를 만드는 법은 오매(烏梅)·산유자(山柚子)·대추나무·황상(黃桑)·황양(黃楊) 등 단단한 나무를 쓰는데, 관의 길이는 30㎝ 못되게 하여 위는 좁고 차차 퍼져 아래를 굵게 한다. 지공(指孔)은 모두 8공이고, 그 중에서 제2공은 뒷면에 있다. 갈대로 만든 작은 혀[舌]를 동구(銅口)에 꽂고, 끝은 나발 모양의 동팔랑(銅八郎)이 달려 확성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이 악기로 전라도 지방의 시나위를 불었던 사람은 방태진(方泰鎭)과 한일섭(韓一燮)이다. 방태진은 1950년대 후반부터 여성국극단의 악사로 따라다니며 국극의 장면이나 중요한 대목을 태평소의 즉흥가락으로 옮기기 시작하여 그 나름대로 중심가락을 만들고 서용석(徐龍錫)에게 전하여 주었다. 방태진의 시나위는 굿거리·자진모리·동살푸리·휘모리로 짜여져 있고, 가락은 그때그때마다 즉흥가락이며 몇 개의 대표적인 가락들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한편 한일섭의 태평소 시나위는 그 자신의 아쟁이나 판소리의 가락들을 태평소에 옮겨 불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한다. 그의 가락은 박종선(朴鍾善)·김동진(金東振) 등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는데, 역시 대표적인 가락들은 몇 가락뿐이고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주장단은 굿거리와 자진모리이다. 방태진의 가락이 경쾌하며 엇먹고 나오는 가락이 많고 리듬을 타는 시나위라면, 한일섭의 가락은 한음 한음을 길게 끌며 선적(線的)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시나위라 하겠다.
828
마른신(黑鞋)
한국(韓國)
피모(皮毛)
용도기능
의(衣) 신발(신발) 혜/리(鞋/履) 흑혜(黑鞋)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229 / 000
상세설명
[정의]
조선시대 문무백관들이 조복과 제복에 신었던 신발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가죽으로 만들고 장식이 없는 단순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신발에 끈이 달린다. 조선 후기의 초상화를 보면 유학자들이 편복과 함께 신기도 했다.
827
약장(藥欌)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과학기술(科學技術) 의료(醫療) 보관(保管) 약장(藥藏)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228 / 000
상세설명
[정의]
약재를 분류하여 따로 따로 넣어두는 여러 개의 서랍이 달린 목제 장.
[기원]
약장의 기원이 언제쯤부터인지 밝히기는 어렵다. 농경생활로 접어들어 점차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자 집안에 기초적인 몇 가지 응급치료약을 비치하게 되었을 것이고, 차차 멀리 사냥을 가거나 이동할 때에도 간단한 비상약을 휴대하고 다녔을 것이다. 이같이 처음에는 한두 가지를 담는 작은 병이나 합, 단지 같은 것에서 점차 가짓수가 많고 규모도 큰 약상자나 약장으로까지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보여진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형식이나 용도, 목적·신분·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구별된다. 형식에 따라서는 문갑식·접개식·반닫이식·2층식·회전식·미닫이식 등으로 나누어지고, 용도나 목적에 따라 한약방용·가정용·왕진용·휴대용·독극약용·수입약용·구급약용·상비약용 등이 있다. 신분이나 지역에 따라서는 왕실용·관수용(官需用)·의원용·반가용(班家用)·서민용, 충청·경기·전라산(産) 등 여러 종류로 구분하여 불린다. 또한, 반닫이나 장롱 속에 다시 10여 개씩의 약서랍이 달린 기형(畸形)의 것도 있다. 재료는 퍽 다양하다. 오동나무·느티나무·회화나무[槐木]·소나무·단풍나무·버드나무와 감·밤·대추·배·은행·호도나무 같은 유실수를 재목으로 사용하였다. 이 중 제일 흔하게 사용된 것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나무와 고급재인 오동나무였다. 재질이 곱고 가벼우며 오래도록 사용하여도 뒤틀리지 않는 오동나무를 전면에 걸쳐 사용한 것도 꽤 있으나, 서랍 앞부분만을 느티나무·대추나무·감나무·회화나무 같이 목질이 단단하여 쥐나 좀벌레 같은 해충 및 습기에 강한 자재를 사용한 것이 많다. 한편, 상류층에서는 실용성도 고려하였지만 장식적인 면에 신경을 써 외부를 나뭇결이 아름다운 오동나무나 먹감나무[烏枾木]의 검은 무늬, 괴목의 옹이[龍目]무늬를 조화 있게 살려 시각적인 멋에 치중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약을 담는 서랍칸 수는 적은 것이 20∼30개이고, 많은 것은 150∼200개 정도의 큰 것도 있으나 보통은 50∼70개이고, 1개의 서랍은 다시 1∼3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때 서랍의 앞칸의 약 이름을 오른쪽에 표기하였다. 약장의 아래쪽에는, 특히 서랍이 큰 것이 많고 자물쇠가 채워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양이 많은 것이나 귀중한 약과 독극약을 넣기 위한 다목적용이었다. 한편, 가정용 중에도 덮개를 하거나 여닫이·미닫이식의 문을 만들고 자물쇠를 채워 약화(藥禍)사고를 방지하였다. 서랍의 크기가 작거나, 수량이 적거나, 앞뒤의 길이가 짧은 것일수록 저장량이 적기 때문에 보다 고식(古式)이 된다. 서랍과 서랍 사이의 칸막이는 상하와 좌우가 모두 막히는 것이 이상적이다. 간혹 2분의 1 정도만 칸막이를 댄 것도 있는데, 이는 보관중 요동이 있거나 각 약재의 고유한 향기가 뒤섞여 엉뚱한 약효가 생길 우려가 있어 이상적인 것이 못된다. 일본의 약장 중에는 상하의 칸막이는 있으나 좌우의 것은 없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한눈에 식별이 된다. 중국의 약장은 회전식인 경우가 더러 있다. 또한, 약재 가운데 회향·목향·황금(黃芩)·사인(砂仁)·계피·황백(黃柏)·익지(益智) 등 방향성이 높은 약재는 특별히 서랍 뚜껑을 다시 만들어 덮고, 작은 구멍을 내어서 오래 보관할 때 향기의 유실을 줄이기도 하였다. 약명은 좋은 글씨를 받아 음각으로 새기거나 새긴 곳을 흰 가루
826
받닫이(半衣欌)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가구(家具) 반닫이(반닫이)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1227 / 000
상세설명
[정의]
전면(前面) 상반부를 상하로 열고 닫는 문판(門板:잦혀 열게 된 문짝의 널)을 가진 장방형의 단층의류궤(單層衣類櫃).
[개설]
나무로 짜서 물건을 넣어두는 장방형의 커다란 그릇으로 궤(櫃)의 일종이다. 궤의 원류는 버들고리와 관계가 있으며, 반닫이는 궤의 윗널이나 앞널의 절반쯤을 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열리게 한 데서 생긴 호칭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표준치수 높이 60∼100cm, 앞면 너비 65∼90cm, 옆면 너비 30∼45cm. 지방에 따라 의류뿐만 아니라 귀중한 두루마리문서·서책·유기류(鍮器類)·제기류(祭器類) 등의 기물을 보관, 저장하는 가구로서도 사용하였다. 서민층에서는 반닫이 위에 이불을 얹거나 기타 가정용구를 올려놓고 실내에서 다목적으로 쓰는 집기였다. 반닫이 역시 소반과 같이 지방에 따라 특색이 있는데, 그 기본형태는 변함없으나 장식과 쓰인 재료가 특이하다. 강화반닫이는 반닫이 중 가장 상품으로 손꼽으며 그 섬세하고 치밀한 세공이 놀라워 조선조 궁궐용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금구장식으로는 무쇠와 놋쇠가 주재(主材)이며, 약과형의 긴 경첩 속에 亞자·卍자를 투각한 것이 많고 감잡이(합쳐 못을 박은 쇠) 장식도 화려하다. 흔히 중앙에는 호리병형의 경첩이 한 개 있으며, 문판 중심에 걸리는 직선형 뻗침대가 있다. 문판을 열면 내부상단에 세 개의 서랍이 있고 느티나무나 소나무가 주재로 되어 있다. 경상도반닫이는 경상남도 지방의 제작으로, 그 중 밀양반닫이가 유명하다. 크기가 대체로 작으며 장식이 많지 않고 나뭇결의 무늬를 살린 소박한 느낌을 준다. 박천(博川)반닫이는 평안도지방산으로 형이 크고 장식금구를 많이 쓰고 바탕목재는 결이 없는 피나무를 흔히 썼다. 장식문양으로 붕어·남대문 등이 눈에 띄며, 조선조 전기에는 무쇠판에 구멍을 뚫어 장식한 것이 있는데, 이를 '쑹소이반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기에 이르면서 놋쇠장식의 약과형 긴 경첩이 7, 8개 나란히 붙어 육중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반닫이는 너비에 비하여 높이가 높으며, 세 개의 큰 불로초 장경첩이 두꺼운 무쇠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양 옆널에는 무쇠 달형 들쇠가 하나씩 있고 전면에 국화형 감잡이와 능형(菱形) 광두정못이 3면 모서리를 장식한 것이 많으며 재료는 느티나무가 많이 보인다. 대체로 반닫이의 구조는 두꺼운 통판의 천판과 측널을 잇고 있으며 천판과 뒷널, 천판과 옆널의 짜임은 맞짜임형식이고, 옆널과 앞널, 옆널과 뒷널의 짜임새는 사개물림(네 갈래로 오려내고 맞추는 기법)의 우리 나라 특유의 결구법을 쓰고 있다. 이 반닫이의 문짝 중앙부에 자리잡은 자물쇠 앞바탕은 실패형으고, 자물쇠 앞바탕을 중심으로 좌우에 국화형(菊花形) 바탕에 활형손잡이(弓型擧金)를 각기 달았다. 문짝 양쪽에 국화형(菊花形) 광두정을 붙였고 경첩은 실패형 경첩을 부착하였다. 하단의 몸체 중앙에 국화형(菊花形) 바탕에 활형손잡이(弓形擧金)을 달았고 이음새는 고추잎형 감잡이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