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제사에 쓰이는 그릇.
[내용]
조선시대 이후 제례는 크게 관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것과, 일반의 사사로운 집단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제례(公共祭禮)에는 왕가와 종묘, 관가와 대성전(大成殿) 및 향교, 그리고 유림(儒林)과 서원 등의 제례가 포함된다. 반면에 사사로운 집단을 중심으로 한 사사제례(私事祭禮)에는 일반적인 조상숭배의 제례가 포함된다. 공공제례의 경우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사제례의 경우 권위보다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상을 추모하거나 애경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한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제기도 공공제례의 경우 그 형태가 다양하고 가지 수도 많은 데 비하여, 사사제례의 경우 간단하면서도 형태가 몇 가지 안 된다.
[재료]
제기는 그 재료가 나무·사기·놋쇠로 되어 있다. 아마도 나무로 만든 제기는 가볍고 운반하기가 쉬워 주로 묘제(墓祭)에 많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집에서는 주로 사기와 놋쇠로 된 것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지내는 제사의 경우 목기(木器)의 사용여부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 송시열(宋時烈)은 검소하고 값이 비싸지 않아 무방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나중에는 이 목기도 집에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놋쇠 제기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서 많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가격도 물론 높거니와, 그것을 깨끗이 닦아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제기가 시중에 나타나고 있다.
[종류]
제사에 쓰이는 그릇은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그릇과는 달리 만들어져 있다. 편을 담은 편틀은 네모로 크게 만들어져 쓰지 않을 때는 여러 개를 포개어 간수할 수 있다. 그리고 접시류는 둥근 모양에 밑으로 높은 받침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기에는 목기(木器)가 많고 유기나 사기도 있으며, 크고 높은 제상과 함께 별도로 본관했다가 제사 때에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제기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향로(香爐 : 향을 피우는 작은 화로), (2) 향합(香盒 : 향을 담는 그릇. 사기, 농쇠, 나무 등으로 만듬), (3) 모사기(茅沙器 : 모사를 담는 그릇으로 보시기 같이 생겼으며 굽이 아주 높음), (4) 주독(主犢 : 신주를 모시는 독), (5) 신주(神主 : 위폐로 고인의 위를 모시는 나무패, 대개 밤나무로 만들되 길이는 여덟치 폭은 두치 가량이다. 나무 대신 종이로 만든 신주를 지방(紙榜 이라고 함). (6) 변(邊 : 실과와 건육을 담는 제기. 원래는 대나무로 굽을 높게 엮어서 만듬). (7) 두(豆 : 김치, 젓갈을 담는 제기로 굽이 높고 뚜껑이 있음). (8) 병대(餠臺 : 떡을 담는 제기로 윗판츤 사각형임). (9) 탕기(湯器 : 국을 담는 그릇으로 여러가지 크기의 것이 있음). (10) 시접(수저를 올려 놓는 제기로 대접 비슷하게 생겼다. 앞서 수저로 이 시접을 세번 가볍게 두드려 신령에게 고함). (11) 주배(酒杯 : 술잔으로 잔대(잔받침)를 가지고 있음). (12) 준작(罇爵 : 주기(酒器)로서 사기나 구리로 만드는 데 꼭지가 있고 밑바탕에 굽이 있는 것을 이(彝)라도 한다. 준(罇)에는 소 모양의 희준(犧罇), 코끼리 모양의 상준(象罇) 등 여러가지가 있고, 작(爵)은 새부리 모양으로 생겨 술을 따르는데 쓰임). (13) 조(俎 : 고기를 담는 그
[정의]
회색 또는회흑색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
[발달과정/역사]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 사이에 생산되었고 15세기 전반 세종의 재위시기에 가장 다양하게 발전하여 전국에서 생산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분청사기 그릇의 형태는 고려시대의 것이 대부분 계승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었으며, 대접의 경우 기벽이 비교적 얇고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가 많다. 매병은 고려매병의 당당한 형태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 전체적으로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S자형의 굴곡이 심해지며 구연부가 넓은 큰 항아리가 늘어난다. 특히 제기(祭器)의 경우 고려시대에서는 볼 수 없던 기형으로 조선사회의 유교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야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분청사기병은 구연(口緣)은 외반(外反)되었고, 짧은 목에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벌어져 내려가면서 동체(胴體)의 하부(下部)에서 풍만하게 배가 부르고 다시 좁혀져 세워진 병이다. 무문(無文)이고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옅은 녹색을 띠는 청자유(靑磁釉)가 엷게 시유되었으나 시유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빙렬(氷裂)이 나 있고, 일부 유(釉)는 박리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구연이 일부 결실되었고, 기형(器形)이 고르지 못하다.
[정의]
회색 또는회흑색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
[발달과정/역사]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 사이에 생산되었고 15세기 전반 세종의 재위시기에 가장 다양하게 발전하여 전국에서 생산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분청사기 그릇의 형태는 고려시대의 것이 대부분 계승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었으며, 대접의 경우 기벽이 비교적 얇고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가 많다. 매병은 고려매병의 당당한 형태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 전체적으로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S자형의 굴곡이 심해지며 구연부가 넓은 큰 항아리가 늘어난다. 특히 제기(祭器)의 경우 고려시대에서는 볼 수 없던 기형으로 조선사회의 유교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야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분청철회(鐵繪)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공주 계룡산록에서 발달한 기법으로 백토분장 위에 철분의 안료로 그림을 그린 분청사기이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당시 경기도 광주에서 한창 제작되던 백자청화의 영향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광주의 백자청화는 전문화원들이 그렸던 것에 비하여 계룡산 분청철회는 일반 도공들이 그려 구심살 없고 천진난만한 필치를 엿볼 수 있다. 물고기를 비롯한 문양들은 상상을 벗어나는 현대감각의 추상(抽象)이며 그 경지는 민화와 통하는 독창적인 세계라고 하겠다. 이 분청사기병은 긴 목, 어깨에서 풍만하게 벌어졌다 서서히 좁혀져 세워진 병으로, 동체(胴體) 상부(上部) 세 곳에 철화초문(鐵花草文)을 그려 넣었다. 회청색을 띠는 청자유(靑磁釉)가 시유되었으나, 빙렬(氷裂)이 나있고, 변색되어있다. 동체(胴體) 하부(下部)는 박리(剝離)되어있고,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굽은 다리굽으로,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구연(口緣)은 결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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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다리긴목항아리(有臺長頸壺)
한국(韓國)
토제(土製) 경질(硬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1153 / 000
상세설명
[정의]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후기(後期)에 영남지역 전역에 걸쳐서 출토되고 있는 '신식와질토기(新式瓦質土器)'의 표지적(標識的)인 기종(器種)으로, 받침(臺)이 부착(附着)되어 있으며, 아가리(口緣) 부분이 유난히 벌어져서 '대구광구호(臺附廣口壺)'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긴목항아리의 조형(祖形)으로는 원삼국시대 중기에 표지적으로 출토되는 '고식와질토기(古式瓦質土器)' 기종인 쇠뿔손잡이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가 점차 받침이 붙게 되거나 그릇받침(器臺)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예는 김해 대성동 유적 주변 제1지구 13호묘 출토품과 영남지방 출토로 전하는 호림박물관 수장품을 들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울산 하대 유적 출토품이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하대 43호묘와 44호 묘의 출토품을 들 수 있는데, 44호묘에서는 쇠뿔손잡이항아리와 동반출토되어 어느 정도 빠른 시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굽다리긴목항아리는 굽다리 입곧은항아리(臺附直口壺)와 동반출토된 예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굽다리목곧은항아리로 교체되며서 소멸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전체적인 기형(器形)을 입술과 목부(口頸部), 몸체부(胴體部), 다리(臺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목부분은 약간 벌어지면서 올라오다가 입술끝(口緣端)에 이르러 급하게 밖으로 벌어지며, 몸체는 역삼각형(逆三角形)·장동형(長胴形)·편구형(扁球形)의 모양을 이루고 있고, 다리는 나팔상(喇叭狀)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접시형 뚜껑(蓋)와 세트를 이루며 출토되는 예가 많다. 이 굽다리긴목항아리는 낮은 굽다리를 갖춘 긴목항아리(長頸壺)로서, 경질토기이며, 색조는 회청색을 띠고 있다. 굽다리는 토기의 전체 크기에 비하여 낮은 편이고, 6개의 투창(透窓)을 뚫었고, 동체부(胴體部)는 둥글게 성형하였다. 목(頸部)은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 벌어지고 있으며, 외측면(外側面)에 2조의 돌대(突帶)를 돌리고 그 사이에 물결무늬(波狀文)을 시문하였다. 기면(器面)에는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목과 어깨 부분에 자연유가 흡착되어 있다. 굽다리가 약간 결실되었고, 파손되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정의]
삼국시대에 유행한 제사용 그릇으로 다리가 붙은 토기를 말하지만 주로 신라, 가야지역의 두형(豆形)토기를 칭한다.
[발달과정/역사]
굽다리접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선사시대 및 고대 용기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그릇의 한 종류이다. 중국식 명칭으로는 '두(豆)'라고 하는데 주례(周禮)를 참조하면 나물 혹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며 제기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굽다리접시가 한 시기의 토기유물군 중에 주된 기종(器種)으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무문토기 전기까지 올라가는 굽다리접시 중에는 한반도 동북지방에서만 발견되는 편이고 무문토기 중기까지도 주된 기종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 즉,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단계부터는 굽다리 접시가 점차 주기종(主器種)으로 정착하게 된다. 굽다리점시라는 기종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장기간 다양하게 발전한 지역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며,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보통 고고학자가 토기편년을 할 때에 형식편년의 지준으로 굽다리접시를 선택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굽다리접시의 기본형태를 보면 낮은 접시나 깊은 완(盌), 혹은 바리(鉢)와 같은 배신(杯身)에 원통형(圓筒形) 또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의 다리(臺脚)가 결합된 모습인데 다리를 장식하거나 아니면 그릇의 중량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굽구멍(透窓)을 뚫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는 다른 어떤 기종(器種)보다도 그릇뚜껑이 따로 제작되어 덮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시기의 같은 유구에서도 뚜껑없는굽다리접시(無蓋高杯)가 있는가 하면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도 함께 출토된다. 이 굽다리접시는 회청색의 경질소성이다. 굽다리는 나팔형으로 중간에 두 줄의 돌대(突帶)를 둘러 상·하단(上·下段)로 구획하고, 각각 4개의 굽구멍을 엇갈리게 배치하였다. 배부(杯部)는 벌어지면서 올라가 단을 이룬 뒤, 오므라들어 구연(口緣)을 형성한다. 배부(杯部)의 일부가 결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