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의궤도(儀軌圖). 반열도(班列圖) 또는 노부도(鹵簿圖)라고도 한다.
[내용]
행사의 내용에 따라 구체적인 명칭이 붙여진다. 궁중 행사의 의식과 늘어선 관원들의 배치 상황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어 넓은 의미의 풍속적인 성격을 띤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앞과 끝에 행사 내역 및 참가 인원과 관직을 적은 좌목(坐目)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내용의 정확한 고증이 가능하다. 의식의 광경을 한 화폭에 효율적으로 담기 위하여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식의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하여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위하여 꼼꼼한 공필(工筆)과 아름다운 진채(眞彩)를 사용한다. 그림의 주제는 사연도(賜宴圖)와 진연도(進宴圖)를 비롯하여 관례(冠禮) 또는 가례반차(嘉禮班次)가 많다. 왕세자들의 마마 회복을 축하하는 왕세자두창평복진하도(王世子痘瘡平復進賀圖)도 있다. 장례 발인(葬禮發靷)의 발인반차도(發靷班次圖)와 회갑반차도(回甲班次圖)·생신반차도(生辰班次圖) 등이 있다. 대체로 연회·행렬 등 의례 장면은 모두 평면도 형식으로 인물과 경물(景物)이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건물과 인물들은 정면과 뒷면에서 본 모습으로 나타내는 등 혼합된 형태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고려시대에 등장하여 조선시대를 통하여 빈번하게 그려졌다. 회화사적인 의의보다 당시의 의례 행사, 악대 구성 및 처용무(處容舞) 등 당시의 궁중 행사 장면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조대비사순칭경진하도병(趙大妃四旬稱慶陳賀圖屛)〉·〈헌종가례도병(憲宗嘉禮圖屛)〉 등이 있다.
664
반차도(班次圖)
한국(韓國)
지(紙)
용도기능
문화예술(文化藝術) 서화(書畵) 회화(繪畵) 일반회화(一般繪畵)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일반회화(一般繪畵)
유물번호
001001 / 000
상세설명
[정의]
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의궤도(儀軌圖). 반열도(班列圖) 또는 노부도(鹵簿圖)라고도 한다.
[내용]
행사의 내용에 따라 구체적인 명칭이 붙여진다. 궁중 행사의 의식과 늘어선 관원들의 배치 상황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어 넓은 의미의 풍속적인 성격을 띤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앞과 끝에 행사 내역 및 참가 인원과 관직을 적은 좌목(坐目)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내용의 정확한 고증이 가능하다. 의식의 광경을 한 화폭에 효율적으로 담기 위하여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식의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하여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위하여 꼼꼼한 공필(工筆)과 아름다운 진채(眞彩)를 사용한다. 그림의 주제는 사연도(賜宴圖)와 진연도(進宴圖)를 비롯하여 관례(冠禮) 또는 가례반차(嘉禮班次)가 많다. 왕세자들의 마마 회복을 축하하는 왕세자두창평복진하도(王世子痘瘡平復進賀圖)도 있다. 장례 발인(葬禮發靷)의 발인반차도(發靷班次圖)와 회갑반차도(回甲班次圖)·생신반차도(生辰班次圖) 등이 있다. 대체로 연회·행렬 등 의례 장면은 모두 평면도 형식으로 인물과 경물(景物)이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건물과 인물들은 정면과 뒷면에서 본 모습으로 나타내는 등 혼합된 형태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고려시대에 등장하여 조선시대를 통하여 빈번하게 그려졌다. 회화사적인 의의보다 당시의 의례 행사, 악대 구성 및 처용무(處容舞) 등 당시의 궁중 행사 장면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조대비사순칭경진하도병(趙大妃四旬稱慶陳賀圖屛)〉·〈헌종가례도병(憲宗嘉禮圖屛)〉 등이 있다.
663
석창(石槍)
한국(韓國)
석(石)
용도기능
군사(軍事) 근력무기(筋力武器) 모극(矛戟) 창(槍)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1000 / 000
상세설명
[정의]
구석시시대 이래로 짐승사냥에 효과적으로 이용된 사냥도구인 동시에 공격과 방어기능이 있는 위력적인 무기의 일종이다.
[발달과정/역사]
민족지자료에 의하면 범이나 곰 또는 커다란 멧돼지와 같은 맹수들을 사냥할 때에는 활을 쓰지 않고 주로 창을 썼다고 하는데, 이 역시 돌창이 공격기능과 함께 방어기능을 가졌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모양은 돌화살촉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돌창이 약간 크다. 신석기시대의 돌창은 떼에서 만든 것과 갈아서 만든 것이 있으며 슴베가 없는 무경식(無莖式)과 유경식(有莖式), 버들잎 모양(柳葉形)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돌창은 돌살촉과 달리 많은 양이 출토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돌창이 일부 특수한 짐승사냥에 쓰인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신석기시대에 돌창이 나온 유적으로는 온천 궁산리, 봉산 지탑리, 선봉 서포항 유적 등이 유명하다. 이 석창은 무경식(無莖式) 석창(石槍)으로 전면을 마연(磨硏)하여 매끄럽다. 창머리부분에는 능(稜)이 있고, 단면은 마름모형(菱形)이다. 창날은 예리하고, 몸체(身部)는 나무를 끼울 수 있게 재마연(再磨硏)하였다. 몸체(身部) 상단에 지름 0.4㎝ 크기의 구멍을 앞뒤로 뚫었다. 전체적으로 긁힌 흔적이 있고, 창날이 약간 마모되었으나 거의 완형이다.
662
백자청화매화문잔받침(白磁靑畵梅花文盞托)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잔대(盞臺)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998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핬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백자청화(靑畵)는 유약을 입히기 전의 그릇 표면에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순백자와 마찬가지로 잡물의 함유가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장석계 유약을 그 위에 씌워서 번조한 것이다. 코발트계의 안료는 페르시아 일대에서 일찍이 개발하여 사용한 것으로 아라비아 상인의 손을 거쳐 중국을 통해 수입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회회청(回回靑)이라고 불렀으며 대단히 귀하게 여겼다. 이 백자잔받침은 구연(口緣)은 넓게 외반되었고, 목(頸)에서 저부(底部)까지 내곡을 이루며 좁아져 세워진 잔빋침이다. 청화안료(靑華顔料)는 사용하여 동부(胴部) 한 곳에 매화꽃과 가지를 그렸다. 유색(釉色)은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전면에 시유되었다. 굽은 안굽의 형태이며 굽다리 바닥의 유(釉)를 훑어낸 후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661
백자청화초문발(白磁靑畵草文鉢)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발(鉢)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997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전에서는 오로지 백자만을 사용했으므로 백자의 생산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부분 분청사기를 사용핬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백자청화(靑畵)는 유약을 입히기 전의 그릇 표면에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순백자와 마찬가지로 잡물의 함유가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장석계 유약을 그 위에 씌워서 번조한 것이다. 코발트계의 안료는 페르시아 일대에서 일찍이 개발하여 사용한 것으로 아라비아 상인의 손을 거쳐 중국을 통해 수입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회회청(回回靑)이라고 불렀으며 대단히 귀하게 여겼다. 이 백자발은 구연(口緣)은 약간 내만된듯하고, 구연(口緣)에서 굽에 이르는 외측면선(外側面線)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기벽이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서 무거운 느낌을 주며, 굽다리가 높은 편이다. 문양은 청화안료(靑華顔料)를 사용하여 내저면(內底面) 중앙(中央)에 원을 구분한 문양을 간결하게 그려 넣고, 외면(外面) 구연(口緣) 아래에 한 줄의 선대를 돌리고, 외측면(外側面) 두 곳에 추상화된 초문(草文)을 간략하게 시문하였다. 유색은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고, 굽다리 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내저면(內底面)에 모래를 받치고 포개 구은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