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의 마구(馬具).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고들개나 밀치끈에 매달았던 청동제 방울로서, 장식적인 효과와 아울러 말이 움직일 때 소리가 나게 함으로써 말을 탄 사람의 위엄을 드러내는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인 형태는 구형(球形)으로서 윗부분에는 매달기 위한 반환상(半環狀)의 고리[瞿]가 달려 있고, 하반부에는 장방형의 절개구(切開口)가 나 있으며 그 내부에는 청동제의 알맹이가 들어 있어 소리를 낸다. 표면에는 인면문(人面文)·나선문(螺旋文)·화문(花文) 등의 무늬가 있다. 지름 10㎝ 내외의 대형과 지름 2∼3㎝ 정도의 소형의 것으로 나누어진다. 삼국시대에 출현한 것으로, 이 시기의 고분의 부장품으로서 다른 마구들과 함께 다수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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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철회초문호(粉靑沙器鐵繪草文壺)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분청(粉靑)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항아리(항아리)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965 / 000
상세설명
[정의]
회색 또는회흑색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
[발달과정/역사]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 사이에 생산되었고 15세기 전반 세종의 재위시기에 가장 다양하게 발전하여 전국에서 생산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분청사기 그릇의 형태는 고려시대의 것이 대부분 계승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었으며, 대접의 경우 기벽이 비교적 얇고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가 많다. 매병은 고려매병의 당당한 형태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 전체적으로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S자형의 굴곡이 심해지며 구연부가 넓은 큰 항아리가 늘어난다. 특히 제기(祭器)의 경우 고려시대에서는 볼 수 없던 기형으로 조선사회의 유교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야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분청철회(鐵繪)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공주 계룡산록에서 발달한 기법으로 백토분장 위에 철분의 안료로 그림을 그린 분청사기이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당시 경기도 광주에서 한창 제작되던 백자청화의 영향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광주의 백자청화는 전문화원들이 그렸던 것에 비하여 계룡산 분청철회는 일반 도공들이 그려 구심살 없고 천진난만한 필치를 엿볼 수 있다. 물고기를 비롯한 문양들은 상상을 벗어나는 현대감각의 추상(抽象)이며 그 경지는 민화와 통하는 독창적인 세계라고 하겠다. 이 분청사기항아리는 구부(口部)가 직립(直立)되어 세워지고, 동체(胴體)가 풍만하게 벌어져 구형(球形)을 이루고 있고, 낮은 굽다리를 지닌 호(壺)이다. 동체(胴體) 상단(上段)부분에 간략화된 철화초문(鐵花草文)이 그려져 있다. 연한 녹갈색의 청자유(靑磁釉)가 시유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유(釉)가 뭉쳐있다. 굽은 다리굽으로, 굽다리 바닥의 유(釉)를 흝어낸 후 내화토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동체(胴體) 하부(下部)가 약간 노태(露胎)되어있고, 동체(胴體) 상부(上部)에 균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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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문수막새(蓮花文圓瓦當)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주(住) 건축부재(建築部材) 지붕재(지붕재) 수막새(수막새)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61 / 000
상세설명
[정의]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기와는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국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적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 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暑)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이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다. 수막새는 수키와로 인해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막새부(드림새)를 접합시킨 기와이다. 막새부는 반원형·타원형인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원형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문양 역시 각종 당초·보상화·동물·귀면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연꽃 문양이다. 연꽃 문양의 막새는 중앙에 연자(蓮子)를 담고 있는 원형의 씨방(子房)을 중심으로 주변에 연꽃잎의 문양대를 돌렸다. 연꽃잎은 잎의 배치 양상에 따라 단판·복판·중판으로 구분된다. 씨방과 연꽃잎 사이에 수술을 표현하기도 하며, 각각의 꽃잎 중심부에 꽃모양의 자엽(子葉)을 넣기도 하고, 연꽃잎과 더불어 보상화나 당초문을 함께 표현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원의 가장자리는 테두리로서 주연(周緣)이라고 부른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주연에 구슬을 일정한 간격으로 연이어 배치해 놓은 무늬(連珠文)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연꽃문수막새는 짙은 회색의 연질와당으로 씨방(子房)은 중앙 원권(圓圈)내에 두툼하면서 볼록하게 처리하였으며 연씨(蓮子)를 배치하였으나 마모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연꽃잎(蓮瓣) 8엽(葉으로 양각선을 이용하여 중첩된 것처럼 배치하였다. 연꽃잎과 연꽃잎 사이에 사이잎(間葉)이 작은 삼각형상으로 나있다.ㅣ 주연(周緣)은 결실되어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배면에 손가락으로 밀어 물손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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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문수막새(蓮花文圓瓦當)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주(住) 건축부재(建築部材) 지붕재(지붕재) 수막새(수막새)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60 / 000
상세설명
[정의]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기와는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국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적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 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暑)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이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다. 수막새는 수키와로 인해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막새부(드림새)를 접합시킨 기와이다. 막새부는 반원형·타원형인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원형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문양 역시 각종 당초·보상화·동물·귀면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연꽃 문양이다. 연꽃 문양의 막새는 중앙에 연자(蓮子)를 담고 있는 원형의 씨방(子房)을 중심으로 주변에 연꽃잎의 문양대를 돌렸다. 연꽃잎은 잎의 배치 양상에 따라 단판·복판·중판으로 구분된다. 씨방과 연꽃잎 사이에 수술을 표현하기도 하며, 각각의 꽃잎 중심부에 꽃모양의 자엽(子葉)을 넣기도 하고, 연꽃잎과 더불어 보상화나 당초문을 함께 표현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원의 가장자리는 테두리로서 주연(周緣)이라고 부른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주연에 구슬을 일정한 간격으로 연이어 배치해 놓은 무늬(連珠文)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연꽃문수막새는 강릉 구정면 학산리에서 출토된 연꽃문수막새(蓮花文圓瓦當)이다. 융기된 씨방(子房)에는 많은 연씨(蓮子)가 돋을 새김되었고 내구에는 7엽(葉)의 연꽃잎(蓮瓣)이 새겨져 있다. 각 연꽃잎사이로 7엽(葉)의 연꽃잎이 시문되어있고, 주연(周緣)에는 구슬무늬(蓮珠文)가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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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문수막새(蓮花文圓瓦當)
한국(韓國)
토제(土製) 기타(其他)
용도기능
주(住) 건축부재(建築部材) 지붕재(지붕재) 수막새(수막새)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59 / 000
상세설명
[정의]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한다.
[발달과정/역사]
기와는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국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적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 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暑)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이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다. 수막새는 수키와로 인해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막새부(드림새)를 접합시킨 기와이다. 막새부는 반원형·타원형인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원형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문양 역시 각종 당초·보상화·동물·귀면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연꽃 문양이다. 연꽃 문양의 막새는 중앙에 연자(蓮子)를 담고 있는 원형의 씨방(子房)을 중심으로 주변에 연꽃잎의 문양대를 돌렸다. 연꽃잎은 잎의 배치 양상에 따라 단판·복판·중판으로 구분된다. 씨방과 연꽃잎 사이에 수술을 표현하기도 하며, 각각의 꽃잎 중심부에 꽃모양의 자엽(子葉)을 넣기도 하고, 연꽃잎과 더불어 보상화나 당초문을 함께 표현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원의 가장자리는 테두리로서 주연(周緣)이라고 부른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주연에 구슬을 일정한 간격으로 연이어 배치해 놓은 무늬(連珠文)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연꽃문수막새는 강릉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지에서 츨토된 연꽃문수막새(蓮花文圓瓦當)이다. 연씨(蓮子)가 담긴 씨방(子房)을 중심으로 주변에 연꽃술과 9엽(葉)의 연꽃잎(蓮瓣)이 있던 것이 파손되어 현재 6엽 뿐이다. 각 연꽃잎 사이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주연(周緣)에는 구슬무늬(蓮珠文)이 둘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