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뒤웅박의 옛 이름은 '드嘔'로 ≪훈민정음≫(해례본)에서는 호(瓠)를 이렇게 풀이하였다. 방언으로는 ○박·두뱅이·주룸박·두룸박 등으로 부른다. 일반적인 형태는 바가지처럼 둥글지만, 호리병처럼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박으로 만들기도 한다. 터지거나 깨지지 않도록 대오리로 그물처럼 만들어 덧싸기도 하는데, 이 때에는 대오리를 윗부분에서 모아 묶어 고리로 삼는다. 뒤웅박에는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여름철에 밥을 담아두면 잘 쉬지 않는다. 이밖에 씨앗을 갈무리하거나 달걀 따위도 두며, 흔히 처마 밑이나 보꾹 밑 또는 방문 밖에 매달아둔다. 경상북도 상주지방에서는 오짓물로 구운 것을 쓰며, 박이 나지 않는 데에서는 짚으로 호리병처럼 엮어 사용한다. 한편, 함경도지방에서는 뒤웅박에 구멍을 뚫고 속이 빈 작대기를 꿰어 씨를 뿌릴 때 사용하는데, 옛말 그대로 드베 또는 두베라고 부른다.
639
숫돌(砥石)
한국(韓國)
석(石) 편마암(片麻岩)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석공(石工) 지석(砥石)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26 / 000
상세설명
[정의]
숫돌은 간석기(磨製石器)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의 돌 연모 제작기술은 갈기수법에 의한 간석기 제작기술의 보급과 발전으로 특징 지워지는데 숫돌은 이러한 기술의 보급을 직접 증명해주는 중요한 두고 가운데 하나이다. 숫돌은 주로 사암과 니암 계통의 돌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숫돌이 갈아야 하는 대상의 돌감보다 더 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 돌감을 갈 때 숫돌도 함께 갈려야허며 이 때 생기는 돌가루가 마찰력을 높여주어 갈아야할 대상이 더 잘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숫돌의 모양은 장방형(長方形), 원형(圓形), 타원형(橢圓形) 등 매우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도구의 제작 과정과 방법에 따라 입자가 거친 숫돌, 중간 숫돌, 그리고 입자가 곱고 미세한 완성용 숫돌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도구에 따라 숫돌의 용도가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의 사용방법은 대개 돌감을 숫돌 위에 올려놓고 위↔아래, 오른쪽↔왼쪽 또는 원운동을 하면서 가는데 일부 작은 돌연모의 완성단계 또는 끝 부분의 날·모를 세울 때에는 돌감 위에 작은 숫돌을 대고 움직여 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숫돌은 반드시 간석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숫돌의 윗면에서 발견되는 홈줄자국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데 이러한 자국은 치레걸이용 구슬을 만들기 위해 원통형의 옥을 갈았던 흔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숫돌은 집자리 또는 그와 관련된 생활유적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으며 그 존속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가지 지속되었다. 이 숫돌은 선사시대의 일반적인 숫돌과는 달리 편마암계통의 석재를 이용하여 긴네모꼴(長方形)로 납작하게 다듬고 휴대하기 편리하게 상단부에 구멍을 뚫어 끈을 매도록 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숫돌은 서울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 주변, 화성 마하리유적, 청원 주성리유적 등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
638
가락바퀴(紡錘車)
한국(韓國)
토제(土製)
용도기능
산업/생업(産業/生業) 공업(工業) 염직(染織) 방추차(방추차)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25 / 000
상세설명
[정의]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방적구의 일종.
[발달과정/역사]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드는 방적기구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황해도 지탑리(智塔里), 강원도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 흔암리(欣巖里) 등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바늘이 실에 감긴 채 출토된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BC 5세기∼AD 6세기부터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동기시대 이후의 것은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은 방차를 써서 삼[麻]과 같은 식물섬유를 뽑아 평직물을 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드는 방적기구로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선사시대의 가락바퀴는 원반모양, 팽이모양, 주판알모양, 공모양 등이 있다. 가락바퀴의 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이 구멍에 가락바퀴의 축이 될 막대를 넣고 그 축을 돌리는 방법으로 실을 고아서 뽑는데 사용한다. 재질로 보면 흙을 빚어서 구운 것, 돌로 만든 것, 또는 질그릇 조각을 갈아서 만든 것 등이 있는데 선사시대에는 주로 흙을 빚어서 구운 것이 많다.
637
완(盌)
한국(韓國)
토제(土製) 연질(軟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24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전체적으로 적갈색을 띠고 있는 연질의 완(盌)이다. 둥근 저부(底部)로부터 벌어져 올라가 완만한 곡선(曲線)을 이루다 외반(外反)되어져 구연(口緣)을 이루며 입술(口脣)은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기면(器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고, 내면(內面)에 불규칙 물손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636
적색토기발 (赤色土器鉢)
한국(韓國)
토제(土製) 연질(軟質)
용도기능
사회생활(社會生活) 의례생활(儀禮生活) 상장(喪葬)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923 / 000
상세설명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이다.
[발달과정/역사]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긴목항아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가까지 계속 사용된다. 특히 신라와 가야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신라의 것은 어깨목이 각을 이루며 바닥에 대(臺)가 달리는 경우가 많고 동체(胴體)에 기하학적 무늬가 있고 토우(土偶)를 붙이기도 한다. 가야(伽耶)의 것은 어깨와 목이 곡선으로 이어지며, 대가 없고 따로 만들어진 굽받침이나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다. 무늬는 물결무늬(波狀文)가 주류를 이룬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 부서지기 쉬어서 신석기시대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각 시대별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가지무늬(彩文)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와 타날문도기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워 그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납작바닥토기, 손잡이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백제토기는 승석문(繩蓆文)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납작바닥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그릇받침(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밀폐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진 신라토기는 두드리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아주 단단한 것으로 그릇의 종류로는 긴목항아리(長頸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 토기는 적갈색을 띠는 연질 토기로, 동체(胴體)는 편평한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벌어졌고, 구연(口緣)은 외반되었다. 기면(器面)에 문양은 없으나, 물레를 이용하여 성형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외면(外面) 일부는 산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