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큰 나무를 쪼개어 안을 파내서 만든 큰 그릇.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만드는 방법과 모양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하는데, 귀함지·도래함지·모함지 등이 있다. 귀함지는 굵은 통나무를 길이로 켜서 외부를 거의 직사각형으로 갸름하게 파고, 내부는 장방형의 형태로 판다. 바닥든 대체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둥근 모양이다. 바닥은 대체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둥근 모양이다. 양쪽에 전이 달려 귀함지라 불리며, 이것을 손잡이로 쓸 수 있어 편리하다. 도래함지는 굵은 통나무 속을 둥글게 판 것이다. 윗부분에 빙 둘러 전이 달려 있으며, 벽면은 밖으로 구부러지게 파서 바닥면과의 각을 죽였다. 둥글어서 도래함지라 한다. 모함지는 직사각형의 널빤지로 밑판을 삼고 위로 바라지게 벽면을 짜서 목판형식을 만든다. 그 쓰이는데가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두루 쓰인다. 곡물이나 음식을 담아 두기도 하고,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여름에 함지에 밥을 푼 다음에 밥그릇에 담기도 한다. 그리고 식품류를 담고 떡가루를 버무리거나 반죽할 때, 또는 김장소나 깍두기를 버무리는 등 조리의 여러 조작을 할 때, 혹은 떡이나 과줄 등을 담아 운반할 때 등 여러가지 일에 쓰인다. 크기는 여러가지이며 무겁고 튼튼하므로 한 가정에서 대를 물리면서 사용하였다. 중간 크기의 것은 가운데 지름이 80㎝, 깊이 20㎝ 정도이며 주변에 5∼6 ㎝ 정도의 전을 붙인다. 전을 좌우 양쪽에만 10㎝ 정도로 넓게 붙인 것도 있으며, 큰 것에는 붙이지 않는다. 새로 만든 함지박은 콩댐을 먹여 반들거리고 견고하게 하였다. 목제 외에 종이로 만든 종이함지도 있다. 이것은 먼저 물에 담가서 땟국물과 풀기를 뺀 고한지(古韓紙)를 꼭 짜서 묽은 풀에 다시 담가 풀물이 고루 배도록 한 다음, 목함지 둘레에다 2∼3㎝의 두께로 부착시켜 형태를 만들고 잘 말린다. 잘 마르면 목함지에서 떼어 다시 손질하여 콩댐을 한다. 물기 없는 음식을 다룰 때 사용하면 가벼워서 매우 편리하다. 이 함지는 양쪽에 전이 달려 있는 귀함지이다.
449
함지
한국(韓國)
나무(나무)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함지박(함지박)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0633 / 000
상세설명
[정의]
큰 나무를 쪼개어 안을 파내서 만든 큰 그릇.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만드는 방법과 모양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하는데, 귀함지·도래함지·모함지 등이 있다. 귀함지는 굵은 통나무를 길이로 켜서 외부를 거의 직사각형으로 갸름하게 파고, 내부는 장방형의 형태로 판다. 바닥든 대체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둥근 모양이다. 바닥은 대체로 안쪽으로 구부러진 둥근 모양이다. 양쪽에 전이 달려 귀함지라 불리며, 이것을 손잡이로 쓸 수 있어 편리하다. 도래함지는 굵은 통나무 속을 둥글게 판 것이다. 윗부분에 빙 둘러 전이 달려 있으며, 벽면은 밖으로 구부러지게 파서 바닥면과의 각을 죽였다. 둥글어서 도래함지라 한다. 모함지는 직사각형의 널빤지로 밑판을 삼고 위로 바라지게 벽면을 짜서 목판형식을 만든다. 그 쓰이는데가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두루 쓰인다. 곡물이나 음식을 담아 두기도 하고,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여름에 함지에 밥을 푼 다음에 밥그릇에 담기도 한다. 그리고 식품류를 담고 떡가루를 버무리거나 반죽할 때, 또는 김장소나 깍두기를 버무리는 등 조리의 여러 조작을 할 때, 혹은 떡이나 과줄 등을 담아 운반할 때 등 여러가지 일에 쓰인다. 크기는 여러가지이며 무겁고 튼튼하므로 한 가정에서 대를 물리면서 사용하였다. 중간 크기의 것은 가운데 지름이 80㎝, 깊이 20㎝ 정도이며 주변에 5∼6 ㎝ 정도의 전을 붙인다. 전을 좌우 양쪽에만 10㎝ 정도로 넓게 붙인 것도 있으며, 큰 것에는 붙이지 않는다. 새로 만든 함지박은 콩댐을 먹여 반들거리고 견고하게 하였다. 목제 외에 종이로 만든 종이함지도 있다. 이것은 먼저 물에 담가서 땟국물과 풀기를 뺀 고한지(古韓紙)를 꼭 짜서 묽은 풀에 다시 담가 풀물이 고루 배도록 한 다음, 목함지 둘레에다 2∼3㎝의 두께로 부착시켜 형태를 만들고 잘 말린다. 잘 마르면 목함지에서 떼어 다시 손질하여 콩댐을 한다. 물기 없는 음식을 다룰 때 사용하면 가벼워서 매우 편리하다. 이 함지는 양쪽에 전이 달려 있는 귀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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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항아리(靑磁壺)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청자(靑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항아리(항아리)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632 / 000
상세설명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하는데, 청자색을 진하게 하기위해서는 유약을 여러 번 두껍게 발라야 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다만 구리성분[銅分]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는 1250~1300℃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로 구워낸 자기를 말한다.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장 고려적인 특징을 보이는 형태이다. 소문(素文)청자는 기명의 표면에 어떠한 채색도 가미하지 않은 청자로, 정선된 흙으로 얇게 구워내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와 유약색이 뛰어난 것이 많으며 주로 청자 초기 단계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청자항아리는 구연(口緣)은 외반되어 전과 같이 수평을 이루며, 어깨에서 벌어졌다. 동체상부(胴體上部)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좁혀져 세워진 항아리다. 무문(舞文)으로 물레 성형의 흔적이 남이 있고, 연녹색의 청자유(靑磁釉)가 시유되었으나 시류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바닥은 평저(平底)이고 구연(口緣)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447
백자단지(白磁壺)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단지(단지)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631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순백자는 아무 문양도 없는 순백의 백자를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음각문양의 백자가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되면서 가장 많고 12세기에는 양각, 반양각과 투각, 상형기법 등의 백자가 발전하여 전북 부안의 유천리 가마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백자보다 청자의 생산이 압도적이었으며, 경질백자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발전하여 17세기 후반부터는 거의 백자 일색으로 그중에도 순백자가 대부분이다. 이 백자단지는 구부(口部)가 직립(直立)되어 세워지고, 어깨에서부터 벌어져 동체(胴體) 상부(上部)에서 최대로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져 세워진 단지이다. 무문(無文)이며 기면(器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기면(器面)에는 드문드문 기포가 나타나 있으며 전면에 회청색의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나 시유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굽 안바닥의 유는 갈라져 있다. 굽은 안굽의 형태이며 접지면(接地面)의 유(釉)를 훑어낸 후 번조하였다. 동체 일부에 모래가 묻어 있다.
446
백자단지(白磁壺)
한국(韓國)
도자기(陶磁器) 백자(白磁)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저장운반(貯藏運搬) 단지(단지)
장르
고미술국학(古美術國學) 도자기(陶磁器)
유물번호
000630 / 000
상세설명
[정의]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백자(白磁)는 규사[硅砂:석영]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번조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 유리질화된 경질이 아닌 연질(軟質)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시유되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기벽가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질백자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경적진에서 원대 청백자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추부(樞府)백자가 등장하였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며, 이는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의 석수동 가마의 발굴로써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청자와 같은 시기인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조선백자의 기형은 원만하고 유연하면서 절제된 선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기형들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선적인 특징을 지닌 것은 유교적인 생활태도에서 발달했던 제기(祭器)와 문방구이다. 백자의 종류는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순백자에 어떠한 안료로 문양을 나타내느내에 따라 백자청화, 백자철회, 백자동화(銅畵) 등으로 구분하며 넓은 의미로 보면 철채나 흑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순백자는 아무 문양도 없는 순백의 백자를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음각문양의 백자가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되면서 가장 많고 12세기에는 양각, 반양각과 투각, 상형기법 등의 백자가 발전하여 전북 부안의 유천리 가마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백자보다 청자의 생산이 압도적이었으며, 경질백자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발전하여 17세기 후반부터는 거의 백자 일색으로 그중에도 순백자가 대부분이다. 이 백자단지는 구부(口部)는 직립되어 세워지고, 어깨에서 벌어져 동체(胴體) 상부(上部)에서 중심을 이루다 서서히 좁아져 내려간 단지로, 납작한 뚜껑이 있다. 뚜껑의 윗면은 편평하고, 주연은 경사져서 내려오다가 각을 이루며 측면과 만난다. 동체(胴體) 중간에 굵은 양각선(陽刻線이 횡(橫)으로 짧게 부착되어 있다. 기포가 있는 회청색의 백자유(白磁釉)가 시유되었으며, 물레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굽은 다리굽이나 결실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