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들기름에 절여서 만든 가죽 신.
[개설]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서 만든 진 땅에서 신는 신. 유혜(油鞋)· 이혜(泥鞋)라고도 하고, 징을 박았다 하여 ‘징신’이라고도 한다. 진신은 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형태를 보면, 남자의 진신은 태사혜 모양과 같고, 여자의 것은 당혜나 운혜와 같은 모양이다.
[역사]
진신은 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만드는 법은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 여러 겹 겹쳐서 바닥을 만들고 신등의 가장자리는 역시 가죽으로 백비를 쳐서 안으로 감쳤으며, 봉임법(縫父法)은 청올치실로 견고한 박음질법을 쓰고 있다. 밑창에는 쇠붙이로 징을 촘촘히 박았다. 징은 지름 0.7㎝ 정도의 원형돌기로 만들어 밑창의 둘레에 촘촘히 박고, 앞바닥 가운데와 뒤꿈치 중간에는 세로 1㎝, 가로 2㎝ 정도의 반원형이나 사분원 모양의 얇은 쇠붙이 징을 박아 방침(防浸)이 잘 되어 신의 수명을 길게 하며, 진흙이 달라붙는 것을 막고 있다. 재료면에서 볼 때 주로 상류계층에서 신은 것 같다.
319
진신(油鞋)
한국(韓國)
피모(皮毛)
용도기능
의(衣) 신발(신발) 혜/리(鞋/履) 기타(其他)
장르
민속품(民俗品) 민속품(民俗品)
유물번호
000434 / 000
상세설명
[정의]
들기름에 절여서 만든 가죽 신.
[개설]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서 만든 진 땅에서 신는 신. 유혜(油鞋)· 이혜(泥鞋)라고도 하고, 징을 박았다 하여 ‘징신’이라고도 한다. 진신은 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형태를 보면, 남자의 진신은 태사혜 모양과 같고, 여자의 것은 당혜나 운혜와 같은 모양이다.
[역사]
진신은 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만드는 법은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 여러 겹 겹쳐서 바닥을 만들고 신등의 가장자리는 역시 가죽으로 백비를 쳐서 안으로 감쳤으며, 봉임법(縫父法)은 청올치실로 견고한 박음질법을 쓰고 있다. 밑창에는 쇠붙이로 징을 촘촘히 박았다. 징은 지름 0.7㎝ 정도의 원형돌기로 만들어 밑창의 둘레에 촘촘히 박고, 앞바닥 가운데와 뒤꿈치 중간에는 세로 1㎝, 가로 2㎝ 정도의 반원형이나 사분원 모양의 얇은 쇠붙이 징을 박아 방침(防浸)이 잘 되어 신의 수명을 길게 하며, 진흙이 달라붙는 것을 막고 있다. 재료면에서 볼 때 주로 상류계층에서 신은 것 같다.
318
청동합(靑銅盒)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합(盒)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432 / 000
상세설명
[정의]
운두가 그리 높지 않고 둥글넓적하며 위에는 뚜껑이 있는 놋그릇.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크기에 따라 큰합·중합·작은합·알합 따위로 불리며, 돌잡이용일 경우 돌합이라 부른다. 합으로는 또 주발 정도의 크기로 반상기 일습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합반상기라 한다. 합은 흔히 놋쇠로 만들었으나 궁에서는 은으로 된 은합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합에는 국수장국·떡국·밥·약식·찜 등 따끈하게 먹는 음식을 주로 담았다. 조선 중엽에는 이 합이 양반가를 비롯하여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실생활 용구로 널리 쓰였다. 이에 따라 늘어난 놋그릇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전통적 유기제작법인 방짜기법 외에 손쉬운 주물기법으로도 합을 만들었는데, 부유한 양반가에서는 방짜합을 많이 사용하였고 일반서민들은 흔히 주물합을 사용하였다. 주물기법으로 된 합은, 동(銅)과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하여 두드려 만든 방짜합과 달리 황동(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나 그밖의 잡금속을 섞어 녹인 금속을 주물틀에 부어서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다. 주물기법으로 만든 합은 방짜합에 비하여 잘 휘거나 깨지며 쉽게 변색되는 단점이 있다. 놋합은 다른 놋그릇과 같이 1900년대에 쇠퇴하였다가 광복과 더불어 다시 그 제작이 활발하여졌으나, 지금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은 현대적 합금제품에 밀려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이 합은 아가리는 오므라지고 바닥은 소담하게 넓고 둥글어 안정감과 풍부함에서 안숙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뚜껑은 아가리를 완전히 덮는 형태이며 바닥은 평저이고 기벽은 얇다.
317
청동합(靑銅盒)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식(食) 음식기(飮食器) 음식(飮食) 합(盒)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431 / 000
상세설명
[정의]
운두가 그리 높지 않고 둥글넓적하며 위에는 뚜껑이 있는 놋그릇.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크기에 따라 큰합·중합·작은합·알합 따위로 불리며, 돌잡이용일 경우 돌합이라 부른다. 합으로는 또 주발 정도의 크기로 반상기 일습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합반상기라 한다. 합은 흔히 놋쇠로 만들었으나 궁에서는 은으로 된 은합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합에는 국수장국·떡국·밥·약식·찜 등 따끈하게 먹는 음식을 주로 담았다. 조선 중엽에는 이 합이 양반가를 비롯하여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실생활 용구로 널리 쓰였다. 이에 따라 늘어난 놋그릇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전통적 유기제작법인 방짜기법 외에 손쉬운 주물기법으로도 합을 만들었는데, 부유한 양반가에서는 방짜합을 많이 사용하였고 일반서민들은 흔히 주물합을 사용하였다. 주물기법으로 된 합은, 동(銅)과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하여 두드려 만든 방짜합과 달리 황동(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나 그밖의 잡금속을 섞어 녹인 금속을 주물틀에 부어서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다. 주물기법으로 만든 합은 방짜합에 비하여 잘 휘거나 깨지며 쉽게 변색되는 단점이 있다. 놋합은 다른 놋그릇과 같이 1900년대에 쇠퇴하였다가 광복과 더불어 다시 그 제작이 활발하여졌으나, 지금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은 현대적 합금제품에 밀려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이 합은 아가리는 오므라지고 바닥은 소담하게 넓고 둥글어 안정감과 풍부함에서 안숙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뚜껑은 아가리를 완전히 덮는 형태이며 바닥은 평저이고 기벽은 얇다.
[정의]
청유(靑釉)를 시유(施釉)한 자기.
[발달과정/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료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색과 유려하고 당당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그리고 독창적인 상감기법 및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더욱이 고려 이전의 기명들이 대부분 의식용 그릇이었던 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합(盒), 대접, 접시, 완(碗), 술잔, 병, 주전자 등과 같은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장식용 그릇인 꽃병[화병], 연적(硯滴), 향로에는 오리, 원숭이, 사자, 혹은 참외나 석류 등의 동식물 모습을 표현했는데 매우 뛰어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청자철회(鐵繪)는 철분이 많은 자토를 물에 타서 태토 위에 먼저 무늬를 그리고 그 다음에 청자유를 씌워 구운 청자이다. 상감이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는 데 비하여 철회는 그릇 표면에 직접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유색(釉色)은 다른 청자와 달리 대개 산화염으로 구운 듯 황갈색이나 녹갈색이 나는 것이 많다. 문양의 종류는 다양하지 않으나 선보다는 면 표현을 위주로 하여 새, 나비, 연화, 버드나무 등을 많이 그렸다. 이 청자병은 넓고 큰 구부와 짧은 목, 그리고 풍만한 동체를 가진 광구병이다. 어깨부분의 두 곳에 철화초문(鐵畵草文)을 그려 넣었고 동체 두 곳에도 철화초문(鐵畵草文)을 시문하였다. 작은 기포가 있는 녹갈색 계통의 청자유(靑磁釉)가 입혀져 있고 가는 빙렬(氷裂)이 전면에 있다. 굽은 밖으로 벌어진 다리굽으로 굽다리 바닥의 유약을 훑어낸 후 내화토를 받치고 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