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섞은 합금으로 만든 병.
[발달과정/역사]
병은 옛날부터 만들어졌으나 그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병은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의 향수병이다. 이 시대의 제조법은 금속봉의 끝에 진흙을 굳혀서 병의 모양을 만들어 이것을 중형(中型)으로 하고, 용해된 유리 속에 담그거나 유리를 칠해서 만들었다. 이 시대의 유리는 불투명하여 오늘날의 유리병과 같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투명한 병이 만들어진 것은 BC 3세기 이후의 일이다. 1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로마제국에 의해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시리아 방면으로 제조법이 널리 전해져 병이 만들어졌다. 이 시대에는 제조법도 발달되어 철 파이프의 한쪽 끝에 용해된 유리를 붙여서 형틀 속에 넣고, 철 파이프의 다른쪽 끝에서 입김을 불어넣어 병을 만들었다. 오늘날 사람이 입으로 불어 만드는 제법에 가까운 것이다. 18세기의 산업혁명 이후에는 유리를 용해하는 연료로서 석탄을 사용하거나, 원료로는 르블랑법으로 생산된 소다회를 사용하여 유리를 염가로 생산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부분적인 기계화도 이루어졌다. 20세기가 되면서 미국의 M.오웬스가 1903년에 전자동식의 진공흡상제병기(眞空吸上製甁機)를 발명하여 비약적인 대량생산시대로 들어갔다. 맥주병을 숙련공이 입으로 불어 제조하면 1일에 350개가 한도이지만, 이 기계로 제조하면 1일에 6만 개를 제조할 수가 있다. 그 후 새로운 전자동 제병기가 계속 발명되어 점점 더 고성능의 것이 나타나고 있다. 주된 기계로서는 린치식 ·로이런트식 등이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IS(Individual Section)기이다. 회수되어 두 번 이상 사용되는 헌 병이 줄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원웨이병, 즉 새 병의 수요가 증대하고 무게는 점차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주로 액체를 담는 목이 좁은 그릇으로 이 병은 나팔처럼 벌어진 구부와 좁은 목, 풍만한 동체를 가진 청동병이다. 동체를 세줄의 돌대(突帶)로 구획하고 그 사이에 두줄, 한줄, 한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두었다. 굽은 넓고 높으며 한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두었고 두개의 구멍을 맞뚫었다. 전면에 녹청색의 녹이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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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靑銅鏡)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화장구(化粧具) 경(鏡)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408 / 000
상세설명
[정의]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섞은 합금으로 만든 거울.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역사시대에도 그 모양과 형태를 바꾸어 가며 만들어졌다. 얼굴을 비추는 면은 반질반질하게 만들었고, 뒷면에는 꼭지가 달리거나 여러 가지 무늬 및 길상어 등을 새겨 장식하였다. 중국에서는 4000여 년 전 제가문화(濟家文化) 시기부터 거울이 등장하고 있고, 전국(戰國)시기에 성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등화 함께 나오는 잔줄무늬거울(細文鏡, 粗文鏡)은 얼굴을 비추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제례의식(제례의식)과 관련된 의식용 도구인 것으로 판단되며, 이른바 검(劍), 경(鏡), 옥(玉) 등 권위의 상징으로서 최고 신분층의 소유물로 보아야 한다. 철기시대 이후 역사시기에 들어오면서 중국계통의 거울 특히 한나라 거울(漢鏡)이 들어오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거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의 선사시대 동경은 조문경계통과 세문경계통의 두가지가 있는데, 조문경계통은 부여 연화리(蓮花里), 대전 괴정동(槐亭洞), 아산 남성리(南城里), 그리고 평양, 성천 등에서 나온 것이 있고, 세문경계통은 영암(靈岩), 화순(和順)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조문경이 먼저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 세문경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철기시대 이후 한나라 계통의 거울이 출토되며, 한경을 본떠 만든 방제경도 함께 나온다. 한나라 거울은 전한경, 왕망경, 후한경 등이 있는데, 특히 거울 뒷면에 기년을 새기는 등 명문이 있는 자료는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동경의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종류와 양에서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 고려동경은 출토지나 출토상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연대추정에 어려움이 있고, 또한 제작지가 중국인지 고려인지, 중국 것을 되부어서 만들었는지 불분명하여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동경의 형식은 앞면을 반들반들하게 하여 물체를 비쳐보도록 하였고 뒷면 중앙에는 꼭지를 두었으며 주위를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였다. 동경의 형태나 무늬는 시대에 따른 외래문화의 영향이나 공예기술의 발달에 의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체형태는 원형을 기본으로 하며, 그 밖에 정방형, 팔각형, 꽃잎형, 보주형, 종형, 병형 등 다양하며, 청동기시대에는 꼭지가 하나였던 것이 고려동경에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꼭지로 된 것도 있다. 문양은 기하학무늬, 문자, 동·식물, 인물 등이 다양하세 사용되었다. 이 동경은 꽃잎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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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靑銅鏡)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화장구(化粧具) 경(鏡)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407 / 000
상세설명
[정의]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섞은 합금으로 만든 거울.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역사시대에도 그 모양과 형태를 바꾸어 가며 만들어졌다. 얼굴을 비추는 면은 반질반질하게 만들었고, 뒷면에는 꼭지가 달리거나 여러 가지 무늬 및 길상어 등을 새겨 장식하였다. 중국에서는 4000여 년 전 제가문화(濟家文化) 시기부터 거울이 등장하고 있고, 전국(戰國)시기에 성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등화 함께 나오는 잔줄무늬거울(細文鏡, 粗文鏡)은 얼굴을 비추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제례의식(제례의식)과 관련된 의식용 도구인 것으로 판단되며, 이른바 검(劍), 경(鏡), 옥(玉) 등 권위의 상징으로서 최고 신분층의 소유물로 보아야 한다. 철기시대 이후 역사시기에 들어오면서 중국계통의 거울 특히 한나라 거울(漢鏡)이 들어오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거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의 선사시대 동경은 조문경계통과 세문경계통의 두가지가 있는데, 조문경계통은 부여 연화리(蓮花里), 대전 괴정동(槐亭洞), 아산 남성리(南城里), 그리고 평양, 성천 등에서 나온 것이 있고, 세문경계통은 영암(靈岩), 화순(和順)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조문경이 먼저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 세문경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철기시대 이후 한나라 계통의 거울이 출토되며, 한경을 본떠 만든 방제경도 함께 나온다. 한나라 거울은 전한경, 왕망경, 후한경 등이 있는데, 특히 거울 뒷면에 기년을 새기는 등 명문이 있는 자료는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동경의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종류와 양에서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 고려동경은 출토지나 출토상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연대추정에 어려움이 있고, 또한 제작지가 중국인지 고려인지, 중국 것을 되부어서 만들었는지 불분명하여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동경의 형식은 앞면을 반들반들하게 하여 물체를 비쳐보도록 하였고 뒷면 중앙에는 꼭지를 두었으며 주위를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였다. 동경의 형태나 무늬는 시대에 따른 외래문화의 영향이나 공예기술의 발달에 의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체형태는 원형을 기본으로 하며, 그 밖에 정방형, 팔각형, 꽃잎형, 보주형, 종형, 병형 등 다양하며, 청동기시대에는 꼭지가 하나였던 것이 고려동경에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꼭지로 된 것도 있다. 문양은 기하학무늬, 문자, 동·식물, 인물 등이 다양하세 사용되었다. 이 동경은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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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靑銅鏡)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화장구(化粧具) 경(鏡)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406 / 000
상세설명
[정의]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섞은 합금으로 만든 거울.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역사시대에도 그 모양과 형태를 바꾸어 가며 만들어졌다. 얼굴을 비추는 면은 반질반질하게 만들었고, 뒷면에는 꼭지가 달리거나 여러 가지 무늬 및 길상어 등을 새겨 장식하였다. 중국에서는 4000여 년 전 제가문화(濟家文化) 시기부터 거울이 등장하고 있고, 전국(戰國)시기에 성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등화 함께 나오는 잔줄무늬거울(細文鏡, 粗文鏡)은 얼굴을 비추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제례의식(제례의식)과 관련된 의식용 도구인 것으로 판단되며, 이른바 검(劍), 경(鏡), 옥(玉) 등 권위의 상징으로서 최고 신분층의 소유물로 보아야 한다. 철기시대 이후 역사시기에 들어오면서 중국계통의 거울 특히 한나라 거울(漢鏡)이 들어오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거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의 선사시대 동경은 조문경계통과 세문경계통의 두가지가 있는데, 조문경계통은 부여 연화리(蓮花里), 대전 괴정동(槐亭洞), 아산 남성리(南城里), 그리고 평양, 성천 등에서 나온 것이 있고, 세문경계통은 영암(靈岩), 화순(和順)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조문경이 먼저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 세문경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철기시대 이후 한나라 계통의 거울이 출토되며, 한경을 본떠 만든 방제경도 함께 나온다. 한나라 거울은 전한경, 왕망경, 후한경 등이 있는데, 특히 거울 뒷면에 기년을 새기는 등 명문이 있는 자료는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동경의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종류와 양에서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 고려동경은 출토지나 출토상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연대추정에 어려움이 있고, 또한 제작지가 중국인지 고려인지, 중국 것을 되부어서 만들었는지 불분명하여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동경의 형식은 앞면을 반들반들하게 하여 물체를 비쳐보도록 하였고 뒷면 중앙에는 꼭지를 두었으며 주위를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였다. 동경의 형태나 무늬는 시대에 따른 외래문화의 영향이나 공예기술의 발달에 의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체형태는 원형을 기본으로 하며, 그 밖에 정방형, 팔각형, 꽃잎형, 보주형, 종형, 병형 등 다양하며, 청동기시대에는 꼭지가 하나였던 것이 고려동경에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꼭지로 된 것도 있다. 문양은 기하학무늬, 문자, 동·식물, 인물 등이 다양하세 사용되었다. 이 동경은 꽃잎형이다.
296
청동보상화문거울(靑銅寶相華文鏡)
한국(韓國)
금속(金屬) 동합금제(銅合金製)
용도기능
주(住) 생활용품(生活用品) 화장구(化粧具) 경(鏡)
장르
기타(其他) 기타(其他)
유물번호
000405 / 000
상세설명
[정의]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섞은 합금으로 만든 거울.
[발달과정/역사]
청동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역사시대에도 그 모양과 형태를 바꾸어 가며 만들어졌다. 얼굴을 비추는 면은 반질반질하게 만들었고, 뒷면에는 꼭지가 달리거나 여러 가지 무늬 및 길상어 등을 새겨 장식하였다. 중국에서는 4000여 년 전 제가문화(濟家文化) 시기부터 거울이 등장하고 있고, 전국(戰國)시기에 성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등화 함께 나오는 잔줄무늬거울(細文鏡, 粗文鏡)은 얼굴을 비추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제례의식(제례의식)과 관련된 의식용 도구인 것으로 판단되며, 이른바 검(劍), 경(鏡), 옥(玉) 등 권위의 상징으로서 최고 신분층의 소유물로 보아야 한다. 철기시대 이후 역사시기에 들어오면서 중국계통의 거울 특히 한나라 거울(漢鏡)이 들어오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거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의 선사시대 동경은 조문경계통과 세문경계통의 두가지가 있는데, 조문경계통은 부여 연화리(蓮花里), 대전 괴정동(槐亭洞), 아산 남성리(南城里), 그리고 평양, 성천 등에서 나온 것이 있고, 세문경계통은 영암(靈岩), 화순(和順)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조문경이 먼저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 세문경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철기시대 이후 한나라 계통의 거울이 출토되며, 한경을 본떠 만든 방제경도 함께 나온다. 한나라 거울은 전한경, 왕망경, 후한경 등이 있는데, 특히 거울 뒷면에 기년을 새기는 등 명문이 있는 자료는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동경의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종류와 양에서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 고려동경은 출토지나 출토상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연대추정에 어려움이 있고, 또한 제작지가 중국인지 고려인지, 중국 것을 되부어서 만들었는지 불분명하여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동경의 형식은 앞면을 반들반들하게 하여 물체를 비쳐보도록 하였고 뒷면 중앙에는 꼭지를 두었으며 주위를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였다. 동경의 형태나 무늬는 시대에 따른 외래문화의 영향이나 공예기술의 발달에 의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체형태는 원형을 기본으로 하며, 그 밖에 정방형, 팔각형, 꽃잎형, 보주형, 종형, 병형 등 다양하며, 청동기시대에는 꼭지가 하나였던 것이 고려동경에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꼭지로 된 것도 있다. 문양은 기하학무늬, 문자, 동·식물, 인물 등이 다양하세 사용되었다. 이 동경은 꼭지 하나(單紐)에 유좌(紐座)를 갖춘 원형(圓形) 동경(銅鏡)으루 유좌(紐座) 에는 화문(花文)이 새겨져 있다. 내구(內區)에는 모란을 연상시키는 만개한 보상화(寶相花) 네 송이가 배치되었는데 꽃 뿐만 아니라 잎, 줄기까지 사실적으루로 묘사(描寫)되어 있다. 주연(周緣)에는 좁은 테를 돌렸다. 표면에는 녹청색의 녹이 간간이 퍼져 있다.